제43집: 신앙자의 자세 1971년 04월 2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06 Search Speeches

하나님이 기쁨을 주신 이유

오늘날 통일교회 자체가 그렇습니다. 통일교인들 가만히 보게 되면 한 때는 뭐 뜻을 위해 일한다고 야단법석을 합니다. 그거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까? 좋은 것은 역사성이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또한, 좋은 것은 시대성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또한, 그것은 미래와 더불어 관계되어 있는 것도 알아야 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역사성을 부정하게 될 때는 기쁨을 지닐 수 있는 자격자가 못 됩니다. 시대성을 부정하는 자리에서는 그 기쁨을 인정할 수 없는 거예요. 여러분이 미래성을 지니고 있는 그 기쁨을 부정하는 자리에 서면 미래를 향하여 가야 할 여러분 앞에 기쁨은 남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뻐하는 그것은 오늘날 통일교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기쁨은 창세 전 하나님의 심정으로부터 창세 이후, 그리고 복귀과정을 거쳐 가지고 복귀완성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시대적인 중심을 결정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시대의 중심뿐만 아니라 미래의 출발의 기원을 세우기 위한 기쁨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쁨을 가졌다는 것은 역사를 대신한 것이요, 시대를 대신한 것이요, 미래를 대신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쁨은 내 자체에 뿌릴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현실에 심어 놓아야 되고, 미래에 심어 놓을 수 있는 기원을 마련하여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세계와 더불어 기뻐하고, 미래와 더불어 기뻐하고, 그럼으로 말미암아 영계도 해원성사함을 받아 가지고 기뻐해야 할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원이 되었으면 그렇게 결과를 맺는 것이 우주의 이치가 아니겠느냐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 혼자만 기뻐하겠다고 하다가는 그 기쁨을 다 놓쳐 버립니다. 역사와 관계맺은 기쁨은 역사가 나에게서 떠나게 될 때에는 그 기쁨도 거두어 갑니다. 시대적인 기쁨으로 관계되어 있는 기쁨이라면 그 시대적 인연을 내가 망각해 버리면 시대적 환경이 기쁨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진 기쁨이 미래적인 기쁨의 터전이 되어야 할 텐데 미래의 기원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기쁨은 산산조각으로 갈라져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뭐 내용도 모르고 하늘이 어떻고 어떻고 야단하다가 나중에 지내고 보면 꿈만 같다는 거예요. 신령역사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보면 그렇습니다. 세례 요한도 그거예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할 때에는 열렬하게 증거하고 다녔지만, 그에게 그런 마음이 떠나게 됐을 때에는 '사생아로 살던 예수가 아니냐? 내가 그보다 모든 면에서 낫다'라고 하는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나에게 있어서의 기쁨은 나를 위한 자기의 기쁨이 아니라 세계적인 기쁨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기쁨이 크면 클수록 자기 자체가 그것을 결실하려 하는 것보다도 더 높고 귀하고 가치 있는 그것을 향하여 전진해야 됩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타락한 이 악의 세계, 슬픔의 바탕이 되어 있는 이 세계에서 그 어떤 기쁨을 느껴 가지고 세상의 환경을 규합하여 그 기쁨 이상의 자리까지 나아가 거할 수 있는 한때를 가졌다면 그것이 얼마나 귀한 것이겠느냐 이겁니다.

그것은 억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요, 이 시대를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요, 과거를 가지고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 3시대의 대가를 치른 입장이 아니고는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더불어 가면서 주신 기쁨을 자기 것으로 알면 안 됩니다. 그것이 자기 것이예요? 자기 것으로 아는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 도둑놈이 그러는 거예요. 그것을 나에게 준 것은 역사를 대신해서 준 것이요, 나에게 느끼게 한 것은 역사를 대신해서 느끼게 한 것이요, 나를 그런 자리에 세운 것은 미래의 출발을 공고화시켜 달라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이 그런 환경에서 그것을 마음대로 하겠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