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집: 정성의 예물 1967년 01월 2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27 Search Speeches

참된 정성이란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물 어린 정성의 터전 위에서 새로운 문화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수고했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편 인간세계를 구원하려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도 역시 그 세계를 창건하시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보다 더 큰 정성의 터전을 준비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놓고 구하지 않으면 세상을 구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이 길을 걸어 나온 사람들은 소망의 터전, 구원의 보금자리를 인류 앞에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셨기에 하나님은 정성의 터전을 준비하여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섭리를 해 나오셨던 것입니다.

정성들이는 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마음이 통일되어야 합니다. 즉 일편단심을 지녀야 합니다. 두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통일된 마음으로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정성은 누구에게 빌려 주었다 다시 찾아올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작이나, 과정이나, 끝이 여러 가지 형태로 변화되어서는 정성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일편단심, 통일된 마음을 중심삼고 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자기를 위주로한 것이 되며는 정성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정성은 나를 위주로 들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 즉 가정이면 가정, 사회면 사회, 국가면 국가 등 더 큰 상대를 위해 들여야만 정성이란 명사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정성들인 것은 자기 일대에 있어서는 남아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자기 일대와 더불어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정성의 터전은 상대를 위한 것만이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상대의 크기에 따라서 정성을 들인 실적이나 인연의 크기가 결정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자주 체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를 위주로 하는 데서가 아니라 반드시 상대를 위하는 데서 정성의 요건이 성립되고, 정성이란 명사가 성립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자식이 부모를 위해서, 아내가 남편을 위해서, 신하가 자기의 군주를 위해서 정성들이게 될 때 거기에 효, 열, 충이란 명사가 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대를 넘어서 역사와 더불어 인연맺어지기 때문에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그런 기준을 존경하고, 그런 인연을 추앙하게 된다는 것은 필연적인 사실입니다.

자기를 위주로 하지 않고 상대를 위해서 하나의 마음을 가져야 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심정을 갖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즉 사랑의 마음을 터전으로 하여 일편단심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상대를 위해야만 정성이란 명사가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정성이란 명사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사랑의 마음으로 일편단심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성들였다, 충성했다 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끊임없이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력만으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상대 세계를 위하는 데 있어서 예기치 못한 불상사나 반대작용이 일어날 수 있고, 항상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노력과 더불어 인내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인내만 가지고도 안 됩니다. 안팎, 사방으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 나타나게 될 때는 그것을 잘라 버릴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싸움이 필요하고 반드시 투쟁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