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집: 소명을 따라서 1971년 01월 2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70 Search Speeches

자기 마음을 조정할 수 있어야

마음이 언제나 우그러지지 않고 주체적인 입장에 있음과 동시에 원만한 자리에 서 있기 위해서는 언제나 자기 스스로 닦아 나가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 격한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그 격함으로 말미암아 다음이 치우침을 받게 됩니다. 슬픈 자리에 들어가면 충격을 받게 되어 자기의 본성과 맞지 않게 마음이 이지러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자기의 심성을 중앙에 위치하게 하면서 자기의 심성이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조정할 수 있는 생활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마음이 기구(氣球)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이 기구와 같이 높이 떠올라 있게 될 때는 모든 것이 관철됩니다. 그렇지만 이 기구가 저기압이 되면 쭉 내려오듯이 마음도 내려오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그 기준에서 그냥 옛날과 같은 자세를 갖고 있으면 이것은 반드시 이지러지는 것입니다.

내려오는 자리에 서게 되면 반드시 더 내려가든지, 반대로 밀고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려오는 데는 어느 정도까지 내려와야 되느냐? 밑창까지 내려와야 됩니다. 밑창까지 내려오게 되면 반작용에 의해서 다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기압이 자꾸 내려가는 입장에서 어느 기준까지 내려가게 되면 도리어 반작용에 의해서 올라가는 입장에 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내려가는 자리를 지키든가, 그렇지 않으면 현재의 입장에서 밀고 올라가는 작용을 하든가 해서 언제나 마음의 기준을 조정할수 있는 신앙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갑이라는 사람을 대할 때는 갑이 어떤 타입의 사람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내가 그 사람을 한 시간 대하고 난 후에 영적으로 느껴지는 감각, 두 시간 대하고 나서 영적으로 느껴지는 감각, 그리고 하루종일 대하고 나서 영적으로 느껴지는 감각을 중심삼아서 그 사람과 내가 상대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플러스이면 그 사람은 상대적으로 마이너스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플러스 입장으로서 열을 가지고 있는데, 그는 상대적인 마이너스 입장으로서 하나밖에 안 가지고 있다고 할때 그 사람과 마음이 기뻐 가지고 주고받게 되면 나의 영적인 그릇이 비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자기의 가진 것을 3분의 1이상 소모시켰다가는 보충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언제든지 심성, 마음의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조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일에 자기 마음의 기준이 그 기준을 넘어 가지고 자기 중심의 위치의 변동이 벌어지게 될 때는 그것을 조정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지극히 어렵다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사람을 통해서 내가 탕감적인 입장에 내려갔으면 그것은 빨리 보충이 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사람을 통해서, 또는 기뻐하시지 않는 환경에서 소모가 되어서 자기의 중심 위치가 이동되었다 할때는 그것을 바로잡기가 지극히 어려운 것입니다.

어떤 사람과 한 시간쯤 주고받고 나서 자기의 마음에 미쳐진 영향이나 혹은 타격받은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그 소모시킨 시간보다도 몇십 배의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타격받으면 힘이 쭉 빠지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그것을 보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일을 1차 당하고, 2차 당하고, 3차 당하게 되면 나 자신의 위치가 어느 한계선을 벗어나는 입장에 서게 됩니다. 그 한계선을 벗어났을때 그것을 다시 보충한다는 것은 굉장히 힘듭니다. 왜냐하면 본성이 그렇게 되는 것을 환영하는 것도 아니요, 그 한계선을 벗어나게 된 것은 본성과 심성에 대해서 상충적인 입장에 섰다는 것이요, 심성을 제쳐놓고 그와 같은 자리에 나갔기 때문에 다시 넘어와 가지고 자리잡는 다는 것은 아주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대인 관계나 혹은 사업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든지 자기의 신앙 자세를 올바로 잡아 가지고 모든 문제들을 비교 검토하면서 자기가 가야 할 방향에 한 시간 한 시간 점진적인 발전을 추구하지 않고서는 소명을 받들어 가지고 그 소명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곳까지 간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것입니다. 더더구나 타락한 인간들이 생활해 나가는 데 있어서는 우리만이, 혹은 나만이 이 길을 갈 수 있게끔 되어 있진 않습니다. 여기에 협조를 받아 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