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집: 하늘이 찾아온 길 1970년 07월 1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76 Search Speeches

종의 자리를 극복해야 하" 우리

하나님은 반드시 종교권을 중심삼고 역사를 하신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기독교를 중심삼고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임으로써 이 땅 위에서 이루려 하였던 뜻이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 하게 될 때,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영적 구원만 이루었지 영육 아우른 완전구원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있는 정성을 다함으로써 예수의 내정을 다 알았더라면 예수님이 형님이요, 신랑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나중에는 예수님이 아버지가 된다는 것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나갔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도 자신이 기도한 자리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중심삼아 가지고 주인과 종의 관계가 맺어진 자리였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정성을 들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 16:21)"하신 것입니다. 이르지 못한 내용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주종관계 이상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느냐? 예수님은 종을 대하는 입장에서만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그 이상의 자리인 형제의 자리나, 신랑 신부의 자리, 또는 부모의 자리에 관해서는 성경에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종의 자리를 극복할 것인가를 추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형의 자리, 신랑의 자리, 부모의 자리의 기준을 중심삼아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예수는 그런 입장에서 정성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자리를 찾아 나가기 위해 정성들이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즉, 예수가 정성들이던 그 이상의 자리를 중심삼고 정성들이게 되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예수가 정성들이던 그 기준을 중심삼고 정성들이게 되면 예수가 협조하겠지만, 예수가 정성들이던 그 이상의 기준을 중심삼고 정성을 들이면 누가 협조하여 가르쳐 주겠습니까? 예수가 정성들이던 것과 같은 종의 인연을 찾기 위해 정성들일 때는 예수가 수고하여 가르쳐 주고 붙들고 나왔지만, 그가 실패한 자리의 인연은 누가 가르쳐 주느냐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예수가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의 독생자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수많은 사람 중에서 나도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말은 했지만 독생자가 못 되었습니다.

그러면 독생자란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사람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사랑이란 독차지하게 되면 죽게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영계에서 이미 독생자라는 인연은 결정되었지만, 그것은 지상을 통해서 결정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통해 가지고 세례 요한 이상의 정성을 들였기 때문에 세례 요한은 양자의 자리에 있고 예수님은 아들의 자리를 상속받았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