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집: 인생의 갈 길 1971년 01월 08일, 한국 춘천교회 Page #270 Search Speeches

몸을 주관할 수 있" 첫번째 방안

그러면 마음과 몸을 통일시키기 위한 첫째 방안은 무엇이냐? 몸을 때려잡는 것입니다. 몸을 치라는 거예요. 몸이 하자는 것 일체를 완전히 부정하라는 거예요. 어느 정도 부정해야 되느냐? 완전 부정하라는 겁니다.

죽었다 하는 자리까지 부정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은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라고 말씀하셨듯이 이런 역설적인 논리가 적용되는 것입니다.

몸뚱이가 완전히 죽어서 마음화되어 마음이 완전히 살아 있는 형태의 입장에 서지 못하면 하나로 완성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몸을 완전히 죽이고자 하는 사람은 마음이 완전히 사는 것이요, 마음을 죽이고자 하는 사람은 몸은 살아 있지만 완전히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부모보다도, 형제보다도, 처자보다도 더 예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왜냐?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천정의 대표자로서 오셨기에 천정과 멀리 떨어져 있는 인간에게 천정을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세상적인 육정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부모나 처자나 형제는 육(肉)을 중심삼은 관계입니다. 이 육정을 끊지 않으면 천정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천정을 따라가려면 육정을 부정하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부모보다도, 처자식보다도, 형제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에 갈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이냐? 천국에 갈 수 있는 공식적인 표를 어디서 받느냐? 자기 어머니 아버지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자기 아들딸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데에서 받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육정을 제거시켜야 합니다. 첫째 목적은 강제로라도 때려잡으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온유겸손하라'고 가르치는 거예요. 그러면 몸뚱이가 온유겸손할까요? 몸뚱이는 자꾸 올라가려하고 교만하려고 합니다. 먹여 주면 자꾸 더 먹으려 하고, 쉬게 해주면 자꾸 더 쉬려 하고, 위해 주면 자꾸 더 위해 달라고 합니다. 따라서 몸뚱이는 악의 바탕이요, 악의 뿌리라는 것입니다. 악과 선의 뿌리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악의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해서는 절대 안 되고, 악한 데는 가지도 말라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서는 천도와 천정의 도리를 넘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정과 인도는 모든 일에서 사탄과 악을 중심삼고 출발시키기 쉽기 때문에 이것을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악을 부정할 수 있는 첫째 방안은 육신을 구속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식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금식기도를 하면서 정성들이면 몸뚱이가 기운이 쭉 빠져서 움직이지를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이 몸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에 좋아한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희생봉사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죽이라는 거예요. 이것은 전부 육신이 싫어하는 행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종교는 육신과의 모든 관계를 부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런 결론이 나옵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모든 종교의 경서를 보십시오. 잘먹고 잘살라는 내용이 있는 경서가 있습니까? 그런 경서는 하나도 없습니다. 종교는 희생봉사, 온유겸손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으면서도 남을 위해 복을 빌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몸뚱이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이 육체를 때려 잡는 놀음이라는 것입니다.

마음과 몸이 대등하기 때문에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몸뚱이를 약하게 함으로써 마음이 득세해 가지고 약하게 된 몸뚱이를 몇 달 동안 끌고 넘어가게 되면 몸뚱이를 다시 올려 놓아도 올라올 수 없게끔 습관화 되어 그 다음부터는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 놓으면 자기가 계획하는 모든 일이 하늘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잘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그냥 놔두어도 돌아 갈래야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양심을 위주로 한 절대적인 자리에서 생애를 엮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 생활의 목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