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집: 승리적 주관가가 되자 1964년 01월 0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47 Search Speeches

신부의 사명

선조들보다 낫다고 하는 것 하나를 세우기 위하여, 믿음의 소망을 바라면서 찾아 나오신 하늘 앞에 사랑받기 위하여 소망을 두고 싸워 나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늘 종말시대에 처해 있는 여러분들은 생활적인 면에 있어서나 각오에 있어서 그들보다 못하면 안 되겠습니다. 그들보다 못해서는 오시는 주님 앞에 신부로서 설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오시는 주 앞에 신부로 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천하를 수습할 신랑을 맞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세계사적인 믿음의 터전 위에서 신부로서의 믿음의 기대를 세우고, 그 믿음의 기대 위에 신랑되신 주님이 나타나서 뜻을 세워 소원성취를 할 수 있게 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6천년 동안 신앙의 기반을 닦은 본래의 목적이었으나, 오늘날까지 인간은 그것을 이루어 놓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말살해 버리고 있습니다. 슬픈 일이 있다면 이 이상 슬픈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런 것을 알았으니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여야 되느냐? 비록 외적인 면에서 역사적인 투쟁은 하지 못할지라도 내적인 면에서 역사적인 모든 투쟁을 부여안고, 오시는 주님 앞에 십자가가 남아질까봐 염려하며 역사적인 십자가를 부여안고 뒤넘이칠 수 있는 투쟁의 역사를 거쳐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믿음의 실체, 소망의 실체, 사랑의 실체로 오시는 주님앞에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그런 기반을 닦아 가지고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터전을 세우면 오시는 주님은 고생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신부로서 신랑을 맞이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한다면 신랑되시는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고생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기반을 닦으면 애급노정도 지나고 광야노정도 지나 가나안노정에 들어서는 입장에 설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오시는 주님 앞에 고통이나 시련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오시는 주님은 신부가 하여야 할 이 모든 싸움을 대신하여 오시게 됩니다.

주님이 오시면 오시는 그날부터는 주의 날이 시작되는데 이 날을 대비하여 가나안의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이러한 사명이 신앙자들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나안의 터전을 못 닦게 될 때는 오시는 주님이 환난의 노정을 걸어 신부들이 가야 할 길을 수습하여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이것을 재차 수습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완전한 믿음의 목적 기반 위에 서 있느냐? 완전한 소망의 목적 기반 위에 서 있느냐? 완전한 사랑의 기반 위에 서 있느냐? 그렇지 못합니다. 아직까지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과 같이 갈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1960년을 위주하여 출발한 노정입니다. 주님을 맞아야 할 신부의 입장에 있는 이 땅 위의 신앙자들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목적의 날을 바라보며 그 기반을 닦아야 할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재차 승리의 조건을 세우기 위하여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민족을 거쳐 나온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