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집: 전도자의 사명과 하늘의 심정 1971년 11월 08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275 Search Speeches

심정을 가지고 사람을 대해야 감동시킬 수 있어

성난 사람이라든가, 심통이 난 사람, 또는 여러분을 속여 먹으려고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거짓말 해 가지고 자기를 속이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속이는 사람이 쓱 오면 여러분은 모르지만 선생님은 압니다. 선생님은 벌써 느낍니다. 그런 사람 뻔합니다. 심통이 검은 먹 같다는 거예요. 먹통 같은 배포를 가지고 슬쩍하려는 사람은 벌써 표정이 다르다는 거예요. 어물어물하면 벌써 아는 거라구요. 말하려다가 어물어물하고, 말하려다 말고 또 말하려다가 말고, 한 번, 두 번, 세 번만 지나게 되면 '아, 저 녀석은 검은 배포를 갖고 있구나'하고 다 아는 겁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분석할 줄 알아야 된다구요.

그럴 때는 '오냐. 네 녀석이 얼마나 그럴지…' 하며 쓱 배수진을 치고 '어디 한번 해보소' 하며 속아 주는 것입니다. 그 사람과 인연맺으려면 속아도 줘야 되는 것입니다. 속아 주어야 되는 거라구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을 하고 슬쩍 속아 주는 것입니다. 한 번 속아 주면 그 사람은 재미가 나게 된다는 거예요. 바쁜 세상에서 그 사람을 아는 사람이 누구 인지 생각이 나나요? 그러니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 내가 전도대원으로 가게 되면 두번째 오는 것입니다. 두번째도 또 그 배포를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그럼 또 속아 주는 것입니다. 한 서너 번쯤 속아 주면 나는 그 사람을 경원하고 있지만, 그 사람은 나를 좋아해 가지고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서너 번쯤 속아도 주는 거라구요.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집문서를 달라고 하면 그것 내주라는 말은 아니라구요. (웃음) 그런 것을 줄 수는 없지만 다만 얼마라도 보태 쓰라고 주는 이런 놀음을 하라는 거예요.

그렇게 해주면 그 사람은 거기에 해당한 자기 소원을 성취해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딱 해주고 그 다음에 왔을 때는'당신, 요전에 가져간 돈을 뭣에 썼는지요?' 하고 물어 보는 거라구요. 그러면서 '여기 와서 그럴 때는 좋지 못한 생각을 가지고 사람을 이용하고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찾아왔던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는데, 한 번 두 번 세 번까지도 나는 양보해 가지고 당신을 위해서 응해 주었는데 이제도 또 그러느냐'고 하면 고개를 숙이는 것입니다.

그때 들이 비벼 놓는 거라구요. 이놈…. 그렇다고 뺨을 갈기라는 것이 아니라구요. (웃음) 그런 마음을 가지고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을 대하듯이 정서적인 줄을 통해 요리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 같은 마음을 가지고 대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 입장에서 보면 누이동생과 같은 사람이 아닙니까? 물론 누이동생 같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나를 찾아와서 그런 부탁을 했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면, 그 말 한마디에 확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서적인 내용을 가지고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도 동물도 정서적인 분야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개도 좋아해 주면 좋아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망아지에게 약을 먹이려고 할 때 때려 가지고는 못 먹인다구요. 내가 옛날에 망아지에게 약을 먹이는 것을 보았는데, 아, 이놈의 망아지도 주인이 목을 싹 끌어안고 맛있는 것을 먹이고 쓰다듬으면서 입을 벌리게 한 다음에 약을 먹이는 것이었습니다. (웃음) 마찬가지라구요. 때리면서 오라고 하면 절대 오지 않는다구요. 그렇잖아? 쓰다듬으면서 오라고 해야 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것이 세상의 이치라구요. 치리법이 그렇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잘못된 사람을 권고하게 될 때는 그런 식으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장들을 보면 '내가 교회장인데 어른을 몰라보고 그런 일을 할 수 있어?' 라고 합니다. 이거 빵점이라는 거예요, 빵점. (웃음) 점수로 말하면 마이너스 한 50점 짜리 라는 거예요.

사람이 고독할 때에는 슬픈 것입니다. 그럴 때는 대개 누구나 동정을 바라는 거예요. 후원을 바라는 것이 인간의 상정이예요. 인간 세상이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럴 때에는 그 사람 앞에 제일 가까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가 남자고 자기도 남자일 때는 동생의 자리에서 형님같이 다정스럽게 대하며 '솔직이 나는 지금 이러이러한 입장에 있지 않느냐. 내 사정과 당신 사정을 보게 되면 당신 사정이 나보다 낫지 않느냐. 당신이 형님이라면 동생 같은 사람을 그런 입장에서 가려 주고 키워 주고 이끌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형님으로서 동생의 입장에 선 나보다 못한 입장에서 그렇게 할 수가 있느냐' 하고 말하는 거예요. 또, 자기가 형님 입장에 있으면 형님 입장에서 그런 마음을 가지고 권고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심정적 분야에 가까운 재료를 가지고 그 사람을 요리해야 된다구요.

부모가 자식을 대하여 채찍으로 때리더라도, 부모한테 맞는 것은 얼른 잊어버리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나도 가끔 그래 보았지만, 기합을 받고나서 한 시간 후에 부모님이 '오냐' 하게 될 때는 벌써 다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형제간에 기합을 주게 되면 잊어버려요, 안 잊어버려요?

'앵' 하는 거라구요.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원리에 있어서 위대한 말이 뭐냐 하면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땀은 땅을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자' 하는 말입니다. 이 말에 녹아나지 않는 사람이 없고 녹아나지 않는 만물이 없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그 말이 위대한 말이라구요. 내가 지내보니까 그렇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