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집: 새로운 일과 수난길 1972년 09월 26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270 Search Speeches

막대한 하나님의 원조가 있-기- 지금까지 발전해 온 통일교회

그 역사를 살펴볼 때, 하늘도 슬퍼할 수 있는 일이 있었고, 우리 인간들도 슬퍼할 수 있는 일이 있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근 20여 년 동안 나오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일을 겪은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대외적인 입장에서 나타난 일도 있었지만 대내적으로도 복잡다난한 과정을 거쳐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거기에는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사연이 많은 것을 나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복귀노정이 개인을 거쳐서 나라까지 나오는 길이 순탄한 길이 아닌 것을 먼저 여러분이 알아야만 됩니다.

그 길을 인간만으로 출발했더라면 오늘의 우리 통일교회가 남아질 수 없는 것입니다. 몇 번이고 없어질 수밖에 없는 그러한 고빗길을 많이 거쳐왔지만, 그럴 때마다 하나님이 우리의 갈 길을 가려 주시고 미래에 남아질 수 있는 터전을 개척해 주셨기 때문에 오늘의 통일교회가 남아진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까놓고 이야기하면,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이 '우리는 고생하고 있다. 수고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여러분 각자의 입장에서 이것을 냉철히 비판해 보게 될 때, 뜻을 위해서 플러스시킨 나 자신의 영향 혹은 실적이 얼마나 크냐를 따져 보면 지극히 희소하다 이거예요. 세상의 일에서도 어떠한 사업계획을 세워 가지고, 혹은 어떠한 목적을 세워 가지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희생과 그만한 노력을 하지 않고는 성공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개인 생활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도…. 여러분, 새벽 4시에 서울시내면 시내에, 혹은 남대문이면 남대문 거리에 나가 가만히 서서 바라보고 있으면, 여러분은 자고 있고 일반 시민들은 자거나 쉬고 있을 새벽에 통행금지가 해제되면서부터 많은 상인들이 생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거나 혹은 달음박질하는 이런 형형색색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24시간 자기 빵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더라도 자기 생각대로 되어지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이 땅 위에서 한 가정을 거느려 가지고 먹고 산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조금 더 크게 봐 가지고 한 가정이 부락이면 부락에서 존경을 받다가 불우한 환경에 몰려 가지고 패가가 되었다 하면, 그 패가가 된 것을 다시 복귀하기 위해서는 1년 2년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정성을 들이더라도 10년 정성을 들이더라도 안 되는 수가 많이 있습니다. 수십년 동안, 혹은 일생을 바쳐 가지고 어느 기준까지 복귀하기 위해 노력하더라도, 그것이 번번이 이루어지지 않는 결과를 맞는 것이 이 세상의 실정이 아니냐? 이렇게 볼 때, 한 집안도 그러하거든, 오늘날 통일교단이 이러한 전면적인 핍박을 받고, 사방에서 우리 가는 길을 방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이와 같은 발전을 가져왔다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지금 현재의 입장으로 보게 된다면, 나라에 있어서도 문제시될 수 있는 이런 단계에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가 수가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니고 있는, 우리가 또 지내 나온 지난날을 두고 볼 때, 무시할 수 없는 실적을 갖춘 단체로서 이미 사회에서 공인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또, 종교계를 두고 보더라도 그렇고, 우리가 승공연합을 통한 활동을 두고 보더라도 무시할 수 없는 실적을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전국에 수많은 종파가 있지만 그 종파 가운데 있어서도, 종교인들 사이에 있어서도 그래도 통일교회에 대해 기대를 갖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금후에 종교 노선에 있어서 통일교회가 짊어진 그 과대한 임무에 대해서 그들은 기대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또, 승공활동에 있어서, 이것이 국내뿐만 아니라 아시아에 있어서, 여러분은 알지 못하지만 일본은 물론이요, 중국에까지, 더 나아가 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까지 올라섰다는 사실은 선생님의 개인의 구상으로 말미암아 되었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막대한 하나님의 원조가 가중된 협조의 결과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