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집: 수난의 정상에서 1971년 05월 05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59 Search Speeches

가면 갈수록 가'된 수난의 길이 있다" 것을 알라

오늘날의 통일교인 여러분들을 두고 보더라도, 이 뜻의 길이 갈수록 좋아지면 모르겠는데 가면 갈수록 점점점 가중된 수난의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다가는 못 가겠다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맨 처음에 출발할 때보다 쉽게 되어 있느냐 하면 쉽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요? 개인복귀가 얼마나 힘들었느냐? 6천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정 복귀가 얼마나 어렵겠느냐? 죽을 각오를 하지 않고는 가정을 복귀할 수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수많은 종교를 중심삼고 볼 때, 결혼을 인정하지 않고 독신생활을 하라고 강조한 것은 타락 전의 천사장 기준과 타락 전의 아담 기준을 복귀하기 위한 것으로, 이것은 하나의 타락 전 아담을 찾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여기에 상대가 허락되면 허락된 그 상대는 어때야 되느냐? 절대적이어야 됩니다. 왔다갔다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죽어도 내 낭군 이요, 살아도 내 낭군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에서 밤이나 낮이나, 청춘 시대에서부터 노년시대까지, 거기에 다른 남자나 다른 여자가 있을 수 없으며 오로지 아담은 해와뿐이고, 해와는 아담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가정이 이렇게 하나되었다고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는 종족을 복귀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

개인복귀보다도 힘든 것이 가정복귀입니다. 가정이 하나되어야 하는데 가정을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 가정이 두 세계를 모시는 가정이다 할 때는 절반을 갈라야 합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가정을 중심삼고 왼쪽은 잘라 버려야 합니다. 종족을 중심삼고는 왼쪽이 없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왼쪽이 없어야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꾸 점점 올라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교인들이 사상적으로 퇴폐되어 제일 위험한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60년대에 여러분들이 개인적으로 싸울 때에는 죽어도 가야 되겠다고 하고, 밥을 굶고 혹은 욕을 먹고, 핍박을 받아도 아무 문제가 일어나지 않더니 축복을 해주니까 자리를 잡으려고 하는 폐단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자리를 잡으려 해서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자리를 잡았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나님도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겠습니까? 그렇지만 자리를 잡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망하는 거예요. 자리 잡으면 망한다는 거라구요. 자리 잡게 돼 있어요, 안 돼 있어요?

그래서 개인복귀보다 가정복귀가 더 힘든 것이라는 거예요.

아내와 남편 둘이서 세상에서 이별하는 이상의 설움을 붙들고, 뜻의 한을 붙들고 눈물짓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부부가 못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부가 떨어져야 될 때 흘리는 눈물 이상으로 뜻의 한을 풀어 드리기 위해 눈물을 흘리고, 그때에 서글픔을 느끼는 이상으로 하나님의 한을 풀어드리겠다고 결의를 할 수 있는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너와 나는 이 뜻을 위해 태어났고, 이 뜻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이것을 해결짓지 않고는 살래야 살 수 없고, 죽을래야 죽을 수가 없는 사람들이다' 하는 부부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편안히 살겠다구요? 여러분이 편안히 살면, 종족은 누가 복귀하고, 민족은 누가 복귀하며, 국가는 누가 복귀하고, 세계는 누가 복귀하겠습니까? 누가 해야 되겠어요? '하나님이 해야 하겠지요' 할지 모르지만,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인간을 통해서 해야 하는 복귀섭리이므로, 인간이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누가 책임져야 되느냐? 아담이 이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아담이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천추의 한을 내 일신이 짊어지는 일이 있고, 하늘땅의 한을 내가 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책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누가 해야 되느냐? 아담이 해야 됩니다. 아담의 입장에 선 부부요, 축복가정이 아니냐 ! 그런데 자리를 잡아서 되겠느냐는 거예요. 자식을 낳게 되면 피난보따리 대신 업고 다녀야 할 자식인 것을 생각해야됩니다.

우리는 나라가 없고 정착지가 없습니다. 하늘로부터 땅 위의 결정적 기반을, 안식의 보금자리를 상속받지 못한 것입니다. 자식에게 피난의 도상에서 젖을 먹여야 하는 서글픔이 곧 하나님의 원통함임을 느끼면서, 자기 자식을 중심삼고 흘리는 눈물과 더불어 하나님을 위로해 드려야 하는 것이 우리 자녀들이 가야 할 효의 길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