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집: 하늘의 심정을 누가 알았는고 1960년 01월 17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50 Search Speeches

예수님은 어떠한 분으로 오셨으며 그의 목적은 무-인가?

그러면 오셨던 예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그는 무형의 아버지를 대신한 실체의 아버지였습니다. 실체의 아버지. 그는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죽어서도 우리의 아버지, 살아서도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생애를 바쳐 모셔야 할 아버지요, 영생의 나라에서도 모셔야 할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아들 딸을 만나 가지고 한번도 아들이라고 불러 보지 못하고 한번도 딸이라고 불러 보지 못한 채, 아들한테 몰리고 딸한테 몰리다 나중에는 창에 찔려 죽어갔습니다. 비통한 일 중에 이 이상 더 비통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오셔서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 16 : 12)"고 하셨던 깃입니다. 이는 아버지로서 자녀에게 할 말을 못다 하셨다는 것이요, 신랑으로서 신부에게 할 말을 못다 하셨다는 것이요, 만왕의 왕으로서 하고 싶은 말을 못다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로마의 법에 걸리지 않는 정도의 말밖에 못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하고 싶었던 말일까요? 아닙니다. 아니예요. 원수의 땅에서 예수님이 자신의 심정을 다 털어 놓았으면 당장에 용서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사탄이 주관하는 이 세계에 있어서는 반동분자요, 반역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늘은 지극히 조그맣지만 그러한 사정을 예고할 수 있는 하나의 국가 형태를 갖추어 놓고 그러한 말을 해야 할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제사장과 서기관, 이스라엘 민족 전부가 하나로 단결하여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한 말씀도 새지 않게끔 해서 실천하였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삼은 이상세계는 시작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환경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제사장과 서기관은 가는 곳곳마다 예수님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잡아먹으려고 했습니다. 그런 판국이니 예수님은 내가 누구며 너희는 누구라는 말도 못하고 가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하늘은 4천년 동안 수고하신 당신의 사정을 알리기 위하여 사정을 풀어 놓고 손에 손을 붙들고 '아버지 !', '내 아들 딸아!' 할 수 있는 한날을 보기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셨건만, 보낸 그것이 한이 된 채 기독교 2천년 역사를 이루어 나온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타락한 인간들 중에서 선을 바라보고 양심이 지향하는 방향을 따라가려고 허덕이는 사람들은 무엇을 원해야 할 것인고? '하나님이 있사옵거든, 하나님이여, 당신의 사정을 알려 주시옵소서' 해야 합니다. 선조들이 외로운 길을 가고 죽음의 길을 가고, 피흘리는 길을 개의치 않고 간 것은 무엇 때문이뇨? 하나님의 사정이 그리웠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정을 알았으면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고?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됩니다. 아까 말한 부자의 심정입니다. 그것을 알아야만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고 나는 아버지의 아들 딸이 될 수 있습니다. 천지가 무너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만은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해결되어야 비로소 소원하신 그 기준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 순간 천지는 역전(逆轉)하던 것이 정상적으로 회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는 때가 끝날입니다.

이렇게 모르는 인류, 모르는 선조들을 지도해 나온 것이 하나님의 슬픔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그것을 알고 그것을 알려주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오셔서 새로운 선포를 하셔야 했습니다. 무엇을 선포하느냐? 천국건설의 청사진을 선포하셨을 것입니다. 인간이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사탄이 소유하고 있으니 그 사탄을 쳐부수고 새로운 본연의 동산을 건설할 수 있는 내용을 선포하셨을 것입니다. 그 선포문이 여기 성경에는 안 나와 있습니다. 다 지워 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천년 역사노정은 갈팡질팡하는 역사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