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집: 국가와 우리의 사명 1971년 10월 09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118 Search Speeches

기도

[기 도]

아버지, 당신께서 한 아들을 이끌어 나오시기에 얼마나 수고하셨고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셨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그것은 저희가 개인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범위내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저희들은 엄중한 섭리적 사명을 해야 할 시대에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여기에 모인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한 아들의 성상을 그리워하시는 아버지의 슬하에 모인 저희들은 아버지 보시기에 염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찾아 나오시는 아들 그 자체가 되어야 되고,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본성의 심정에 화(化)한 미(美)의 실체가 되고 사랑의 주체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늘날 타락한 세계에서 습관화된 저희 자신들을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버지의 표준은 저희 같은 사람들을 찾아오는 것이 아님을 느끼면 느낄수록, 저희들은 부족한 것을 자각하고 미래의 사명을 촉구해야 할 입장에 서서 아버지의 위신과 체면을 세워 드리지 못하는 미급함과 부족함을 자탄할 수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저희 자신들이 당신을 얼마나 사모하고, 당신을 얼마나 흠모하며, 당신의 뜻의 길에 대해서 얼마만큼 간곡한 자세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 저희가 처해 있는 이 자리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는 자리에 서 있어야 할 모습인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오늘의 미급한 자신을 아버지 앞에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당신의 긍휼과 자비와 용서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당신은 이러한 개인들을 합하여 가지고 찾고자 하시는 선한 가정을 찾아왔고, 선한 종족을 찾아왔습니다. 선한 나라와 선한 세계를 이루고자 하는 노정을 두고 볼 때, 여기에는 복잡다단한 사회의 여건들이 방패가 되고 울타리가 되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도리어 이것을 이루지 못하게 방해하는 요소가 연결되어 가지고 세계화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아버지께서 과연 6천년 동안 수고하시지 않을 수 없었다는 기막힌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전능하신 아버지의 권한을 가지고도 그렇듯 오랜 시간을 거쳐오신 소망의 기준을 저희들이 맞아 생애노정에서 해결해야 할 입장에 서게 될 때, 그것이 저희들의 힘만으로는 절대 될 수 없다는 것을 느끼옵니다.

아버님은 책임할 수 있는 인간이 없어서 그 한 날을 맞지 못하신 것임을 느끼면 느낄수록, 저희들은 아버님을 모시는 자리에서 아버님과 하나되지 못하면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오니 당신의 긍휼의 마음이 저희의 심정에 사무칠 수 있고, 본성의 자리에 다시 자리잡게 하여 주시옵소서. 본향 땅을 그리워하는 마음, 본성의 심정을 찾아 가고자 하는 마음, 본연의 아버지의 품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무엇보다도 강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이것이 저희들이 생사의 기로를 가려낼 수 있는 표준이 된다는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저희들 가운데는 남다른 이 길을 따라오기 시작한 지 10년 이상이 되는 식구도 있습니다만, 지내 온 그 연한이 문제가 아니라 그 연한을 따라 아버지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 있으며, 그 인연이 어떻게 설정되어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아들이라는 명칭은 좋은 명칭임과 동시에 지극히 두려운 명칭이요, 딸의 자리라는 것은 지극히 좋은 자리 같지만 무서운 자리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바라보고 기뻐하실 수 있는 본연의 기준이 어떠한 것이며 딸을 바라보고 기뻐하실 수 있는 본연의 기준이 어떠한 것이냐, 사랑하는 자녀들을 놓고 훈시하고 싶어하시고 최후의 소망을 걸어 놓고 모든 것을 상속하고 싶어하시는 아버님의 심정이 어떠한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당신이 그리워하시는 자녀의 심정을 저희들은 모르는 자리에 있사옵니다. 저희들은 당신이 자식을 위해 싸워 나오신 역사적인 과정을 모르는 자리에 서서 습관화된 그냥 그대로의 모습으로 생각하고 혹은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한계권내에 속해 있는 인간들이옵니다. 저희들은 당신이 지녀 오신 심정적 깊은 한계선 이상의 자리를, 혹은 높고 높은 한계선 이상의 자리를 알지 못한 인간들이옵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저희들은 당신의 깊고 높고 귀하신 그 한계선 이상의 심정을 어떻게 해서도 그려 낼 수 없는 모습들이오니, 아버지께서 저희를 자극시켜 주시고 책임져 주셔야 되겠사옵니다. 저희가 저희의 사명을 감당한다 하더라도 아버지께서는 저희가 사명을 감당한 그 자리보다 한 차원 높은 한계선 이상의 심정을 연결시키기 위해 또다시 싸우셔야 한다는 것을 저희들은 생각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불초하고 부족한 자신을 탓하면서 내일의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거룩한 승리의 아들딸된 모습을 그리워하면서 이 자리에 참석하였사오니, 이 자리에 참석한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나'라는 아무개가 심정세계에 있어서 아버지를 그리워하기 전에 아버지께서 그리워하실 수 있는 자신이 되었고, 제가 아버지를 생각지 않더라도 아버지께서는 저를 생각하실 수 있는 자리에 서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저희는 전체를 바쳐서 그 은혜를 갚아 드리고 거기에 하나되고자 하는 사무친 염원의 심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사오니, 저희들을 그냥 그대로 버려 두지 마시옵소서.

저희들은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통일교회가 이렇다 하는 기준을 나름대로 알고 있사옵고, 하나님은 이렇다고 하는 자기 나름대로의 신앙을 갖고 측정을 하고 혹은 체험하여 인정하는 자리에 있사오나, 아버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한계권내에 계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저희가 그것을 알면 알수록 불쌍하신 분이 아버지이시요, 저희들이 불쌍하다고 말할 수조차 없는 불쌍한 자리에 계시는 아버지이십니다. 또 수난길을 극복하는 노정에서, 치열한 투쟁의 전선에서 책임을 지신 분도 아버지이심을 생각하게 될 때, 그것은 저희들이 알고 있는 비참 정도가 아니요, 극복 정도가 아니요, 투쟁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인간대 인간을 중심삼고 생활무대를 삼고 있으되, 영계가 있는지 없는지 감지하지 못할 때가 많사옵니다. 아버지가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저희의 마음이 아버지와 더불어 깊이 속삭일 수 있는 심정의 인연을 찾지 못할 때가 많사옵니다. 아버지가 그리워 심정이 사무친 자리에서 흠모하는 마음을 가지면서도 아버지의 품에 품기고자 하는 느낌 가운데서 자기 일신의 인식을 초월할 때가 없는 자신인 것을 생각할 적마다, 이러한 아들을 찾아 나오시는 아버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님께서 저희를 대신하여 얼마나 사모하고 얼마나 간곡한 심정을 기울이고 계신가를 저희들은 미처 몰랐사오니, 알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반면에 사탄이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말로는 했지만, 체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좋은 것을 바라보고 선한 말과 선한 행동을 하고자 할 때에, 그 길을 막고자 하는 원수가 있는 것이요, 복병하여 있다가 저희가 가고자 하는 길을 막고 저희를 끌고 가려 하는 원수가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최후의 담판을 지어야 하고, 혈투전을 해야 할 행로를 거치지 않고는 아버지의 품에 돌아갈 수 없는 비운의 역사를 거쳐 태어난 저희들인 것을 깨달으면서도 저의 앞을 막고 있는 원수와 어느 한때에 판가리를 지어야 한다는 것을 저희들은 잊어버린 때가 많사옵니다. 내 개인을 두고 그러해야 되겠고, 가정을 두고, 종족을 두고, 민족을 두고, 국가와 세계를 두고 그러해야 되겠습니다. 공중권세 이하의 이 지상 세계권내에 머물러 있는 악의 세력을 타파하고 가야 할 수난 도상에 서 있는 자신들임을 다시 한 번 자인하게 되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가 안 계신다면 불쌍한 무리이옵니다. 아버지가 안 계신다면 몸 둘 곳을 찾을 수 없는 무리이옵니다. 아버지가 안 계신다면 살겠다는 그 마음조차 허무한 마음이 되고 만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무지한 저희를 둘러싸고 있는 원수의 세계적 권한을 누가 책임지겠느냐 할 때에, 타락한 저희들은 책임질 수 없음을 자인하게 되옵니다. 그러면 저를 이 환경에서 구해 줄 사람이 누구냐 할 때에, 저를 낳아 준 부모도 아니요, 형제도 아니요, 스승도 아니요, 나라의 주권자도 아닌 것을 생각하옵니다.

땅과 평면지상에 있는 세계를 향하여 바라볼 수 있는 것이 휘하에는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오로지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아버지의 흠모의 심정을 대신하여,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간곡한 자세를 갖추어 가지고 심각한 심정의 고독을 느끼며 한숨과 더불어 `아버지시여! 어서 오시옵소서. 이 모습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라고 절규하는 것 외에는 원수권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생활을 통해 알게 되옵니다.

저희는 생활 가운데에서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친구인 줄 알았고, 어제 모시고 살던 부모가 오늘의 부모인 줄 알았고, 어제의 인연을 따라 살던 부부와 자식이 본연의 부부와 자식인 줄로 알았사오나 아니었습니다. 어제의 부모가 오늘의 원수요, 어제의 처자가 오늘의 원수요, 어제 사랑했던 나라가 오늘의 원수가 되지 않고서는 이 길을 타개할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생각지 못할 때가 많사옵니다. 왜냐하면 이 세계가 사탄의 혈통의 인연을 가진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끊으려면 먼 자리에서 끊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부터, 내 피살에서부터, 내 심정에서부터 끊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는 말이 사실 그대로인 것을 느끼옵니다.

부모를 잡아 제사를 드려야 할 길이 이 길이요, 처자를 잡아 제사를 그려야 할 길이 이 길이요, 사랑하는 것을 전부 다 바치고 나서 하늘을 위해 자신까지도 죽음의 자리에 내놓지 않으면 안 될 길이 이 길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과연 이 길을 가겠노라고 다짐하고 실천하여 사망권을 제압하고 승리의 일로를 개척하는 길에서 개인은 가정을 희생시키지 않고는 안 되는 것이요, 가정은 종족을 희생시키지 않고는 안 되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나아가 종족은 외적인 민족을 희생시켜야 되겠고, 외적인 민족은 외적인 국가를 희생시켜야 되겠으며, 외적인 국가는 외적인 세계를 희생시켜야 된다는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이것이 가인 아벨의 원통한 투쟁의 행로였던 것을 생각할 적마다 이 심각한 사망권을 해방할 수 있는 직행 통로가 이 지구성의 누구를 통하여 개척될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 보잘것없는 저희들 외에는 없다는 것을 진정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관념적으로 알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 하늘땅을 대신하여, 만민을 대신하여 홀로 생사의 판가리를 짓겠다고 다짐하는 엄숙한 순간이 여기에 모인 자녀들에게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그러한 자리로 몰아넣어야 되겠습니다. 세 가정을 대신하여 자기의 가정을 이끌고 사탄가정을 대하여 싸울 수 있는 판가리의 전쟁터가 이들에게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개인이 그러하고 가정이 그러하고 종족이 그러하고 민족이 그러하고 국가가 그러하고 세계가 그러하기 때문에, 저희들은 개인의 승리의 터전을 확대시켜야 되겠습니다. 가정의 승리적 터전을 넓혀서 종족 편성을 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마음과 몸이 하나된 가운데 이 민족의 운명을 걸고 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남북으로 갈라진 이 비운의 국가를 붙안고 하늘 앞에 책임과 사명을 다하겠다고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이 자리가 저희들이 원해서 나온 자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불러 세우셔서 온 자리보다 저희가 자원해서 찾아온 자리에 서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 앞에 `이제 저희가 싸우러 가는 이 길을 당신이 승리의 길로 맡으시옵소서'라고 보고하고 가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가야 할 것이 타락한 인류가, 타락한 인간의 후손된 무리들이 가야 할 길인데도 불구하고 매양 아버지께서 선두에 서서 수고하는 놀음을 지금까지 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비통한 사실이요, 저희에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승리의 한날을 맞기게 하기 위해 용허할 수 없는 하나의 사실인 것을 자각하는 무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남북한의 정상(情狀)을 아시고, 통일가와 기성교회의 한계선을 아시옵니다. 아버지께서 통일교회를 기점으로 해서 기성교회와 대한민국과 이북을 중심삼고 사위(四位)를 일주하시지 않으면 이 나라는 구원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은 제물의 길이요, 투쟁의 길이요, 원수들이 참소하는 길임을 아옵니다. 이 제물된 길은 그 무엇을 합할 수 없는 길이기 대문에 그냥 그대로 몽땅 주어야만 되겠습니다. 나에게 사탄이 참소할 여건이 있어서, 이것을 쪼개는 자리에 서 가지고는 이 길을 가지 못한다는 것을 저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완성시대를 바라보는 이때에 몽땅 아버지 앞에 드려지는 아들이 되지 않고는 기성교회와 연락지을 수 없고, 그 아들이 서 있는 자리가 하늘적인 탕감의 조건을 중심삼고 승리의 기반을 닦은 자리가 아니고는 가인적인 교단을 굴복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저희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아버지편에 서서 공고한 터전을 다지기 위해 이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수고해 나왔습니다. 그것은 핍박의 길이요 수난의 길이었지만, 그 수난이 문제가 아니옵니다. 수난길이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가중된 수난의 길이 민족을 거치고 세계를 거쳐 나가는 데에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지금까지의 행로는 저희가 미래에 더 큰 전쟁 마당에 나갈 수 있는 용사가 되기 위한 훈련시대의 노정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더듬어 살펴보게 될 때, 출발하던 때보다도 결실할 때가 더 심각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누구든지 출발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망의 자리에서 출발한 인간이라면 사망의 세계 이상으로 심각하지 않고서는 생명의 결과를 가져 올 수 없다는 것이 필연적인 결론이 아니겠습니까? 사망의 세계에서 출발한 저희들은, 생명의 세계를 기원하며 출발한 저희들은 사망의 세계를 떼어 놓기 위하여 생명의 세계가 사탄의 세계보다 가중되게 하기 위한 분별의 투쟁과 싸움을 하여야 할 입장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저희들, 과연 아버지가 그리워서 눈물이 앞설 수 있는 개개인이 되었으며, 통일가의 번성을 위해 자기 일신을 스스로 제물 삼겠다고 허덕이는 생활을 하고 있는 무리가 되었는가 하는 것을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오고 가는 인생 행로에 있어서, 먹고 자고 하는 일상 생활환경에 있어서, 좋고 나쁘고 하는 감정생활에 있어서 좋은 것은 아버지로 말미암아 좋고 나쁜 것도 아버지로 말미암아 나쁘고, 오고 가는 것도, 먹고 사는 것도, 인생살이 일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되어져야 하옵니다. 아버지를 빼놓고는 내 자체가 있을 수 없다는 자리에서 살아야 할 것이 우리의 일생인 것을 생각할 때, 저희들은 너무나도 나를 중심삼고 소유권이 컸던 것을 잘 아는 바입니다.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매양 아버지의 채찍을 맞아야 할 자식이라는 것을 느끼며 당신의 동정이라도 받을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갖추어야 된다는 것을 깨닫게, 이제 아버지께서 직접 나타나시옵소서.

예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을 모아 놓고 그들을 대표할 수 있는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는 물음을 두 번 세 번 거듭하실 때, 베드로가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했던 그 자리는 예수님이 묻는 도수를 가함에 따라 베드로에게 자신이 강한 입장에 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부족함을 자책시키고 새로운 결심을 다짐시키려는 타이름의 자리였다는 것을 아옵니다.

이제 저희 자신들에게 아버지께서 그렇게 묻게 될 때에, `제가 아버지를 사랑하고 뜻을 사랑하는 것을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고 대답할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께서 그것을 묻고 묻고 또 묻게 될 때에 자신 있게 `예, 당신을 사랑하고 있나이다'라고 대답하며, 그 물음 앞에 눈물을 흘리면서 과거에 부족했던 나 자신을 생각하고 왜 저렇게 물으실까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자리에 섰다면 `이 모습으로 아들의 도리를 다할 사람이 되겠습니다' 해야 되겠고, 혹은 나 자신이 미급하기에 완성을 바라보시며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께서 묻게 될 때,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완성을 바라고 세우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희를 부르시어서 `너는 하늘의 아들로서 세계를 대표하여 책임을 다하여 달라'고 부탁하실 때,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의 명령을 바라는 아들의 입장에서 그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이제야 성취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천만번 죽음이 엇갈리더라도, 제물로 희생되는 행각의 노정이 연결되어 있더라도 아들의 운명을 갖지 못한 자신이 가야 할 필연적인 운명길로 알고 가야 되겠습니다.

쓰러지는 자리에서도 아버지의 동정의 손길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탄의 조롱을 받지 않기 위해 아버지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하겠다고 다짐하고 `아버지여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아버지께서 협조하시지 않아도 제 개체는 사탄의 인연을 넘을 수 있는 자신이 있습니다. 어떠한 수난이 있더라도 당신의 협조를 필요로 하지 않고, 그곳을 저 스스로의 책임권을 알고 사수하겠습니다'라고 결의해야 되겠습니다. 동정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늘을 위로할 수 있는 아들이 되겠다고 몸부림친다면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운명에 이르렀다 할지라도 그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아옵니다. 그런 아들이 있거들랑, 그가 쓰러진 자리가 원수의 진영이라 할지라도 아버지께서 서슴지 않고 달려와 위로하시게 될 때,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승리의 권으로 남아진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의 손이 얼마나 아름다웠고, 저희의 이목구비가 얼마나 아름다웠고, 저희의 오관을 통하여 느껴지는 감각이 얼마나 아름다웠고, 마음으로 그리는 심정의 인연을 따르고자 하였던 것이 얼마나 아름다웠사옵니까? 질식할 것밖에 없는 과거지사, 간사하고 추악한 자기 자신이 어떠한 폭탄이 있다면 일시에 폭발시켜 버려도 아깝지 않을 증오의 자체임을 발견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가를 생각해 볼 때, 감히 거룩하신 주체의 손길 앞에 성스럽게 바쳐질 수 없는 모습들이옵니다.

아버지께서 이와 같은 저희들을 찾아오시다니, 이와 같은 못난 것들을 바라보시다니, 이와 같은 수치의 대상을 그리워하시다니…. 그것이 웬 은사이옵니까?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자신을 증오해야 되고, 당신 앞에 부름을 받을 수 없는 자신을 무시해야 된다는 것을 심정적으로 느끼고 필연적인 운명으로 알면서 그런 가운데서 감사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 분별된 자리에 왜 저를 세우시어서 하늘의 소유로 하시고 하늘의 선물을 남기고자 하셨사옵니까? 하오나 저희들은 아들딸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서 그 얼마나 많은 날들과 세월을 지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이것은 과연 심각한 문제이옵니다. 여기 서 있는 이 자식도, 아버지, 당신의 고통을 알고,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슬퍼하신 아버지이심을 알았기 때문에, 저희들이 지금까지 책임을 지고 나온다고 하면서도, 오십년, 반세기의 연령을 지내고 나서도 이렇게 한 나라 앞에 버젓한 자세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에, 아버지. 책임 못한 이 자식은 잠시도 편히 쉴 수가 없습니다. 영광의 연한으로서 당신의 칭찬을 받을 수 있었던 한때를 흠모하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응당히 당하여야 할 시련무대를 스스로 찾아가서 시련을 받지 않으면 이 나라를 수습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행복의 길이 내 앞에 오기를 바라는 것보다도 민족의 행복의 길을 어떻게 개척할 것이냐 하는 것이 하늘이 바라는 것이요, 하늘의 책임을 짊어진 자가 가야 할 길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자기의 행복이라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 복귀의 길인 것을 다시 느끼게 되옵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은 그래도 통일가에 있어서 선두에 섰다는 무리요, 통일교회의 식구를 대표했다는 무리이옵니다. 당신이 기뻐하실 수 있는 아들이 있으면 여기 서 있는 이 자식이 받은 축복의 몇만 배라도 사랑해 주고자 하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요, 이 자식이 받은 마음인 것을 이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극히 사랑하는 종들을 죽을 입장에 내몰았던 아버지, 지극히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몰았던 아버지, 그 아들이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할 때에 대답도 못 하고 눈을 감고, 흑암을 대상으로 맞이하여 바라보는 억울하셨던 아버지이심을 아옵니다. 그러한 대가를 치러 나오신 아버지이시기에 끝날에 그 이상의 책임을 할 수 있는 종들을 바라셨던 것이요, 그 이상의 책임을 할 수 있는 아들을 바라신다는 것을 생각하오니, 여기 불러 모으신 자녀들에게 그 이상의 높은 책임을 맡겨주시옵소서.

생각하면 서러운 자식들이옵니다. 아침이 되면 저희가 수저를 들고 대하는 식탁이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식탁이 되어야 하는 것이요, 먹고 입는 그 모양이 아버지께서 소망을 주실 수 있는 모양이 되어야 할 것이요, 누워서 자는 그 자리가 자기 일신의 행락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안식할 수 있는 보금자리요, 당신이 발판을 넓히기 위한 자리가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야말로 심각한 생명의 길을 저희들에게 허락하여주시옵소서.

아버지, 저희들은 교회를 수습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한 무리이옵니다. 교회를 키워서 아버지 앞에 바쳐야 할 책임을 지고도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무리이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내적인 세계를 대신하여 새로운 하나의 당신의 형상을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를 사랑하옵니다. 하오니 하늘편에 서서 사탄과 대결할 아버지의 아들의 권위를 가지고 딸의 권위를 가지고 이 자리에 임할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에게 다시 한 번 반성의 기회를 주시옵소서.

이번 기간에 이렇게 모인 저희들은 승공이념과 사상을 무장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재 비판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의 소원을 등에 지고, 아버지의 희망을 앞에 놓고, 아버지의 승리적 제물의 기반을 밑에 깔고 이 나라를 업고 책임을 다하여야 할 입장인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앞으로 국가를 대신해야 하는 저희들은 저희들이 찾는 나라가 이 나라가 아닌 것을 알고, 저희들이 찾는 세계가 이 세계가 아닌 것을 압니다. 하오니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나라를 가리고 세계를 가릴 수 있는 책임을 하기 위해 이런 행로를 가고 있는 저희 자신들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하늘의 공의의 심판자와 같은 입장에서 선악을 분별하는 주체적인 사명을 다할 수 있게끔 아버지의 심정과 사정을 이어받기 위해 믿고 움직이는 무리가 되겠다고 전체를 새로이 각오할 수 있는 이번 기간이 되게 하시옵소서.

겉으로 움직여 가지고 겉으로 결실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보다도 먼저 내적으로 공고한 정초석(定礎石)을 놓고 그 터전 위에 세워진 확고한 기반을 갖고 외적인 환경의 인연을 따라 나설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후의 기도 내용은 녹음이 되어 있지 않아서 정리하지 못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