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6집: 성탄일을 맞이할 사명 1966년 12월 2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03 Search Speeches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의 입장-서 성탄절을 축하해야

그러면 여기 모인 우리들은 그날을 어떠한 입장에 들어가 축하해야 되느냐? 이스라엘이 실수를 부정해 가지고 이스라엘의 인연을 되찾을 수 있는 입장에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를 맞을 수 있었던 동방박사 이상의 성의를 가질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입장에서 그가 태어날 수 있는 자리, 그가 태어날 수 있는 환경을 다 알아 가지고 태어나기 전에 복중의 메시아를 모실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태어난 메시아를 모시는 것만이 아니라 복중시대에서부터 모실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이스라엘 나라에서는 그러한 사람이 없었으며, 주님이 복중에서 하루하루 자랄 때 그 어머니의 괴로움을 제거해 주지 못했으며, 그 어머니의 하루의 생활이 편안하도록 책임지고 마련해 주겠다는 아낙네가, 사내가 없었던가! 주님을 복중에 있을 때부터 모시고 정성들일 수 있는 무리가 4천 년 동안 키워 온 이스라엘 나라에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족적인 사명을 망각해 버린 이스라엘을 제거시켜 버리고 새로운 이스라엘적인 이름을 가지고 복중에 있을 때부터 그를 하늘의 왕자로 모실 수 있는 충신 열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인연을 가지고 하늘 앞의 메시아를 위하고 모시는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예수가 틀림없다고 한다면 예수가 복중에 있을 때부터 모신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하늘 앞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가 불인(不人)이건, 병신이건간에…. 예수가 사도들을 택할 때도 그가 병신이라 하더라도 그를 먼저 택하여야 됩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제자들을 사랑하기 전에 그를 사랑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아들딸이 있었던들, 그러한 사람이 있었던들 그런 사람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기독교는 이방의 종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터전이 됐더라면…. 하나님은 사랑의 인연을, 충성의 인연을 밟고 옮겨 가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었던들 예수가 몰려 죽더라도….

그런 사람들이 터전을 지켜 가지고 역사적인 인연을 상속받을 수 있는 준비를 한 터전 위에서 예수를 맞이했더라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옮겨 갈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못 옮겨 가니 이스라엘 민족 또한 옮겨 갈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못 옮겨 가니 예수를 중심삼은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로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로마에 가서 4백 년 동안 시련과 고통의 과정을 거치고 핍박을 받아 가지고 승리한 것보다 이스라엘 나라에서 어느 기간을 거쳐 가지고 승리했어야 했던 것입니다. 기독교의 승리의 터전이 로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서글픈 사실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복중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 앞에 정성을 들이고 마리아를 모셔 가면서 그의 손으로 하늘의 왕자를 받겠다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우리 인류가 책임을 다하고 하나님 앞에 뻗어나갈 수 있는 자세를 갖출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격을 갖출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자격을 상실했다는 것이 얼마나 원통하고 분한 것인가를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분하다는 것입니다. 이랬기 때문에, 복중으로부터 태어난 메시아를 맞이하지 못한 이스라엘이 됐기 때문에 앞으로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도 복중으로 태어나는 그 메시아를 맞을 수 없는 기독교의 역사가 예정되었다는 것입니다.

자라는 메시아를 맞이하지 못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지녔기 때문에 앞으로 주님이 이 땅에 와도 자라는 주님을 맞이할 수 없는 기독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이 그러한 역사적인 배경을 지녔기 때문에, 이 땅 위에 다시 오시는 주님도 뜻을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고 다시 부활적인 승리의 터전을 맞고 난 연후에야 비로소 이스라엘의 후계인 제2 이스라엘인 기독교는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인연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탕감복귀를 하는 데는 인류 역사적인 고비를 그냥 그대로 되돌려 재현시켜서 탕감해 나간다는 사실을 보게 될 때, 이스라엘이 얼마나 책임을 못 했는가 하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회개하게 될 때, 자기가 죄지은 것을 회개하는 것보다도, 이스라엘 민족이 이 땅 위에 메시아가 올 때에 맞이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지 못했던 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예수님의 복중시대부터 '오냐, 네 민족을 위하여 네 나라를 위하여 보내신 하늘의 왕자를 맞을 수 있는 자들이 너희들이로구나' 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속에 기억될 수 있는 이스라엘 사람 한 사람이 없었던 것이 한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 모여서 이날을 축하하는 데는 흘러가는 역사시대의 사람들이 축하하는 그런 흘러가는 날로 축하할 것이 아니라, 역사를 밟고 올라서 하늘이 예수를 보내실 때 마리아를 찾아오셨던 간곡한 심정을 대신하여 마리아를 모실 수 있는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메시아를 대할 줄 아는 그런 주인공이 되어 이날을 축하해야 됩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이날을 축하한다면 여러분은 세계사적으로 역사적으로 이러한 내용을 모르는 수많은 기독교인보다 하늘 앞에 가까운 심정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조건을 결정짓는 거룩한 자리라고 나는 자신하는 바입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