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집: 전통적 생애 1971년 05월 01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243 Search Speeches

참된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참된 삶은 어떤 삶이냐

그러면 참되게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이냐? 참되게 사는 사람은 선한 편의 사람이요, 참되게 살지 못하는 사람은 악한 편의 사람인데, 선한편, 참되게 사는 선한 편의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희망을 갖고 사는 사람입니다. 먼저 희망을 가져야 됩니다. 높은 희망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높은 희망을 가지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희망과 더불어 사는 사람이 선한 편에 속하는 것입니다. 현재 살고 있는 세상은 좋은 세상이 못되기 때문에 좋은 세상에서 살고 싶어해야 되는 것입니다. 현재 살고 있는 세상이 나쁘면 나쁠수록 그 세상과 짝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나쁜 세상에서도 항상 좋은 세상을 그리면서 좋은 세상과 더불어 짝하고 살고싶다는 생각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선한 사람이란 현재에 살고는 있으되 현재를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현재에 살면서 현재와 더불어 살고자 하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다 살고 나서 잘살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현재의 세상이 타락한 세상이요, 현재의 환경이 악한 환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현재 악에서 나서 악에서 살다가 악으로 결말맺기 쉬운 타락권내에 살고 있는 연고로, 살고 나서 보면 못살았다는 결론이 내려지기가 쉽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환경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들이 잘살았다고 할 수 있는 자리로 나가기 위해서는 현실과 보조를 맞추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극복하고 내일, 희망찬 미래의 세계와 더불어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1년, 10년, 혹은 일생을 살게 될 때, 그 사람은 잘살았다는 말을 남길 수 있고, 선하게 살다 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생활에서 엄벙덤벙하면서 자기의 이익과 만족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외적으로 아무리 잘살았다고 해도 잘살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그가 타락한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타락권내에 살면서 거기에 박자를 맞추며 사는 사람은 선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악한 환경에 박자를 맞추며 그 환경에 젖어 사는 생활은 악하면 악했지 선할 수는 없기 때문에 못살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항상 지금보다 더 낫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현재보다 더 낫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더 낫기를 바란다는 것은 곧 더 잘살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더 낫기를 바라는 것이냐? 한때만 낫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나으면 내 후손은 더 낫기를 바라고 그 후손이 나으면 그 후손으로 인하여 세계 만민까지, 혹은 역사시대에서 미래까지 연결되어 더욱 나아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터전을 이루어 놓은 사람이 이 땅 위에 있느냐? 없습니다.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환경에서 사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냐? 전통적 생애를 남겨야 됩니다. 그러나 악한 전통적 생애를 남겨서는 안 됩니다. 선한 전통적 생애를 남겨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생애란 일생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생애라고 하는 것은 일생을 말하는 것이요, 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하루하루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활은 하루하루를 중심삼고 말하는 것이요, 생애는 일생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