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집: 희생과 사랑과 은혜 1971년 05월 02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328 Search Speeches

큰 수고의 대가를 치를 자리- 서 있음을 있지 말라

기독교를 보게 될 때, 기독교가 예수와 선조로부터 전통적인 사상을 이어받아 가지고 그 과정을 거치는 데 있어서 그 대가를 누가 치러야 되느냐? 예수가 그러한 것을 심어 놓고 갔기 때문에 그 과정을 이어받은 기독교가 치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예수님처럼 죽음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고 살고 해서 살아 남은 사람이 개인적으로 책임을 다하고, 가정적으로 책임을 다하고, 종족적으로 책임을 다하고, 민족적으로 책임을 다하며 나온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면서도 지금까지 남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아 나오는 그 은사의 터전이 뭐냐? 그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끝날에 메시아가 올 수 있는 은사의 터전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그 은사의 터전을 아무 공 없이 맞을 수 있느냐? 아닙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내정적인 심정을 중심삼고 탕감의 과정을 거쳐서 정성들여 점핑해 가지고 타고 넘겠다는 불변의 모습과 그러한 과정, 그런 무엇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뭐냐? 생명을 다하는 희생, 생명을 다하는 희생적인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것 이상은 없습니다. 생명을 다하는 희생적 사랑, 그 사랑을 중심삼고 점핑해야 합니다.

점핑을 하는 데에 있어서 자기 리(里)만을 위한 사상을 가진 사람은 더 이상 못 가는 것입니다. 리를 위해서 일하는 데는 세계를 대표해서 한다는 사상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 사상은 절대사상입니다.

그러니 통일교회에서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 은혜냐를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에서 받은 은혜라는 것은 6천년, 사실은 몇천만 년이라구요. 몇천만 대(代)의 수많은 인류가 찾아나오던 최후의 결실로 등장한 은사인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여러분 개인의 공적과 개인의 수고만으로 받을 자격이 돼요? 돼요, 안 돼요? 안 됩니다. 받을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의 심정을 전부 본받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심정은 하나입니다. 심정은 여기에서도 통하고 저기에서도 통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아담에서부터 출발하는 부모의 심정, 부부의 심정, 자녀의 심정을 원칙으로 해서 오늘날 이 시대에도 넓은 범위에서 전체를 걸고 싸워 승리의 터전을 닦아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터전 위에서 그러한 책임자를 만나 그 책임자의 명령을 받아 가지고 거기서부터 뿌리를 잡아서 가지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복을 받을 수 있지 그렇지 않고는 어림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뿌리는 얼마나 깊으냐? 여러분의 뿌리는 6천년 이상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남아지기까지 하나님과 선조들이 수많은 곡절을 거치고 수많은 대가를 치렀던 것입니다. 그 대가라는 것은, 현실있는 나 한 사람의 생명뿐만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치른 대가를 전부 총합하게 된다면, 대한민국이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대가를 치른 은사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 은사를 대하는 여러분이 통일교회 한 십년쯤 믿은 자격을 내세워서 '내가 당당하지' 할 수 있어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이 통일교회에 들어왔다는 사람들, 10년 믿었다든가 15년 믿었다는 사람들, 혹은 36가정이니 무슨 가정이니 하는 사람들, '선생님도 우리가 아니면 뜻을 못 이루지' 하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런 평을 할 단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억천만 년에 처음 나타난, 한번밖에 없는 은사를 받아 억천만 년의 수난의 고비를 거치면서 수많은 수고의 대가를 치러 온 터전이 열매 맺힐 수 있는 자리에 내가 서 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쩌다가 어떠한 은혜인지, 어떠한 인연을 통해서인지 모르지만 역사시대에 한번밖에 없는 시대에 상봉되어, 인연이 되어 이렇게 통일교회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10년 동안 통일교회를 따라 나왔다고 해서 그 10년 동안 산 것을 가지고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어림도 없습니다. 이걸 이어받기 위해서는 천년의 한을 품은 심정을 가지고 정성에 정성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현재에 세우기 위해서는 내 한 몸이 백번 천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마음으로도 넘어가겠다고 하고, 행동으로도 넘어가겠다고 해야 됩니다. 그러한 기준도 세우지 않고 복을 받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도둑놈입니다. 공 없이, 수고하지 않고 소유를 탐하는 자리에서 도적의 길이 생겨나고 강도의 길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 자리는 지극히 두려운 자리라고요, 두려운 자리. 그럴 게 아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