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집: 선열들의 소원 1969년 09월 2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49 Search Speeches

3시대의 종합적인 기원을 마련할 수 있" 때

그러면 우리의 후손들은 어떻게 돼야 되느냐? 다가오는 미래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조상들이 남겨 놓은 미래의 터전을 현실에서 결정지어 놓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미래의 사람들이 지난날의 산 역사를 돌아보며, `이것이 우리들의 생명의 터전이요, 소망의 터전이며 희망봉이었다'고 할 수 있는 과정을 현실에서 거치지 않고는 오늘의 역사는 미래를 향하여 그저 흘러가고 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미래를 중심삼고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현실 자체가 미래의 중심이 되어 내려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과거의 역사와 현재를 살펴볼 때, 과거의 역사는 한과 슬픔으로 미래를 향하여 추구해 나온 역사였습니다. 거기에는 탕감이라는 조건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현실에 부정이 되는 환경이 요구되었습니다. 이 시대에 서 있는 우리들은 과거와 더불어 미래 전체를 대표했다고 할 수 있는 하나의 기원을 마련해 놓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비로소 과거의 역사가 결실되어지는 것이요, 이 시대의 중심핵이 결정되는 것이요, 미래의 새로운 기원이 출발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3시대의 종합적인 기원을 마련할 수 있는 시점은 어느 때인가?

과거에 왔다 간 선열들은 이러한 한 때를 위하여 정성을 들였으며, 이러한 한 때를 맞이하기 위해 그때를 결정지을 수 있는 최후의 판가리 싸움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소원이 이루어지를 고대하면서 자기의 생명을 다 바쳐 땅을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혹은 세계를 위하여 수고하다가 피를 흘리며 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뜻을 위한 죽음길을 자기 생명보다도 귀히 여기고, 그 죽음길을 자기의 생명보다도 가치있게 여겨서 열매맺어 남기고 가려 했던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신앙심을 가지고 틀림없이 결정지을 수 있는 미래의 한날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위하여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의인들이 피를 흘려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때가 어느 때일 것인가? 아담 가정에서 아벨이 피를 흘린 그날부터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시대를 거쳐 수천년의 기독교 역사를 중심삼고 소원해 나온 그 한때는 언제냐는 것입니다. 이날을 소원해 나왔던 수많은 그 선지선열이 각각 다르듯이 그들의 소원도 달랐지만 그 지향하는 목적 기준은 하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목적으로 고대해 온,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결정적인 시점이 어느때냐?

그 한 때를 중심삼고 볼 때, 인류 시조가 타락의 역사를 엮어 놓은 그날부터 만민이 입을 열어 슬픔으로 한탄의 소리를 하였으니, 그런 원한의 소리를 들은 우리들이 오늘 부르짖는 그 인연은 그런 허망한 역사의 인연이 아니라, 우리의 소망의 길이요, 사랑의 길이요, 행복의 여건이 될 수 있는 역사의 인연이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그 기반 위에 서서 행복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워하게 하고, 조상들이 그리워하던 그 천국이 이 땅에서 실현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역사를 재감정할 수 있고, 이 인연을 기뻐할 수 있는 새로운 역사적인 동기가 되어 가지고 후대 사람들도 미래를 중심삼고 사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중심삼고 과거의 역사적인 소원을 추구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아무리 과거의 역사가 흔들렸다 하더라도 이 기원과 더불어 영원히 일치될 수 있습니다. 영원히 일치될 수 있어요. 그러나 이것이 결정되지 않고는 영원히 하나의 나라는 추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미래에는 각 분야마다 새로운 문화의 세계로 발전할 것입니다. 과학도 입체적인 세계관을 향하여 꾸준히 전전할 것입니다. 그 진전된 생활환경이나 사회제도로 인해 우리의 생활적인 인연과 인정, 사정이 달라질 것인데 달라진 그 인연 가운데서 내일의 소망을 붙들고 살아가게 될 때 역사적인 모든 형태 역시 천갈래 만갈래로 갈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사회제도나 모든 국가 형태도 판이하게 달라지고 갈라질 것이기 때문에, 통일국가 형성이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의 세계는 한갓 꿈에 지나지 않게 되어 버린다 이겁니다.

그걸 볼 때, 아무리 그 문화가 발전하고 아무리 생활환경이 달라져 초세계적인 현상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그 세계는 행복의 터전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어느 때 심어진 희망의 터전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행복이 틀림없이 연결되었다고 하는 실감이 자기 생활의 어떠한 감정보다도, 육감을 통해 들어오는 어떠한 직감보다도 강하게 생활무대에서 느껴질 수 있는 기원을 마련하지 않고서는 세계를 움직여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