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집: 주관성 복귀 1971년 10월 0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49 Search Speeches

하나님을 사'하기 위해 모" 것을 버릴 수 있어야

여러분, 절대적이어야 돼요. 그러면 신랑과 신부, 신부와 아버지 사이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이냐? 오늘날 타락한 인간 자체로서 소망과 욕망을 품고 다짐하는 그런 내용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것을 청산지어야 돼요. 타락인간은 누구나가 공식적으로 수난길을 가지 않고서는 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선한 선조를 말하지요? 선한 조상, 그거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선한 조상을 가져야 됩니다. 선한 조상이란 어떤 조상이냐? 공적인 입장에서 고생한 조상을 말합니다. 나라를 위해서, 대중을 위해서 희생한 조상입니다. 적선을 한다, 선을 행한다 하는 것은 남을 위하여 전체를 주는 것이 아닙니까? 줄 때는 어느 정도까지 주어야 되느냐? 자기의 아들딸까지, 자신까지 전체를 주어야 됩니다. 가정에 있어서 할머니면 할머니, 아주머니면 아주머니, 아내면 아내, 딸이면 딸을 몽땅 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가정적인 주인, 가정의 책임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또한 나라를 전부 다 바칠 때는, 나라의 주권과 땅을 하나님 앞에 몽땅 바치면서 `이것을 하나님을 위해 바치고, 세계를 위해서 희생시키겠습니다'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세계를 상속받을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이구, 세계야 어떻게 되든지, 뜻이야 어떻게 되든지 내 아들딸은 못 내놓겠소. 내 돈은 못 내놓겠소'하는 것들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 아들딸이 그 어미 아비의 모가지를 자르는 것이요, 그 돈이 그들의 목을 자르는 것입니다.

끝날이 되면 자기가 제일 사랑하고 애착을 가지던 물건이 자기 가슴을 찌르는 거예요. 지식을 추구하는 학자가 있다면, 그는 자기가 배운 지식이 자신의 목을 매는 것입니다. 그것을 저 시궁창 밑으로 뭉청 집어던지고 왼발로 차 버리라는 것입니다. 차 버리고 초개와 같이 던져 버릴 수 있는 기개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지식이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체면과 위신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여기, 주 교수도 나왔구만. `아! 내가 무슨 교수요'라고들 하는데, 그 교수 짜박지가 하나님 앞에는 통하지 않는다구요. 과거에 목사 노릇하던 목사 짜박지도 통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목사님이 되려면 자기라는 것을 버려야 돼요. 자기를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목사님이 못 되는 거라구요. 목사 짜박지도 못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 문선생도 그렇다구요. 어떤 사람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젠 출세했구만. 그 얼마나 좋겠소' 이러지만 나 좋지 않습니다. 옛날보다 더 심각하다구요. 쇠고랑을 차고 감옥을 출입하던 때보다 더 바쁘다구요. 더 고달프고 더 심각하다는 거예요.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는 거예요. 더 큰 분야, 더 큰 무대의 싸움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고달픈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문선생이나 통일교회는 아무리 반대해도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저 사람들은 한번 한다 하면 하는 패들이다'이건 인정한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