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집: 천국의 거점이 어디냐 1971년 08월 2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42 Search Speeches

하늘의 방향을 이어받을 거점이 되려면

우리는 정당한 사실일지라도 그것을 안팎으로 헤아려 보고, 하나하나 비교해 보아 가지고 자신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길이 아닐 때에는 그것이 아무리 옳은 길이라 하더라도 번번이 그것과 관계를 맺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 개인의 습관을 두고 볼 때, 오늘날 우리 개인을 찾아와 가지고 세계적인 내용을 통고하시는 하나님의 사연이라는 것은 우리 개인에게 있어서 이익이 되는 조건으로써 맞아질 수 있는 내용이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시하는 내용은 열이면 열 사람, 백이면 백 사람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결과를 남겨 주는 것이 아니라 전부 다 손해를 보지 않으면 안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부정적 여건을 거치지 않고는 하나님이 제시하는 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고 환경적으로도 그것을 인정할 수 없는 사실을 느끼고 알게 될 때, 과연 그것을 영원한 것으로 상속받아 가지고 자기 자체의 생애와 더불어 그 터전을 남기겠다고 하며 책임질 수 있는 젊은이들이 있겠느냐 하는 것은 더욱더 어려운 문제가 아닐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어디로 가실 것이냐? 노년기의 사람들도 그렇지만 장년기의 사람들도 하나님이 손댈 수 없다 할 때는 어떻게 하실 것이냐? 철부지인 청년기의 사람들을 통하여 그런 일을 또다시 하셔야 될 것이 아니냐? 하늘의 고충을 알아 가지고 자기 자신은 전체를 위하여 천번 만번 죽어 희생을 하더라도, 그것을 감사하게 여기며 어떠한 수난길도 책임지고 나설 수 있는 젊은이들, 특히 처녀면 처녀들 가운데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겠느냐? 만일 그 자리를 이어받고 나설 수 있는 하나의 가냘픈 여자가 있다면, 그 여자가 서는 자리는 지극히 외로운 자리요 무력한 자리일 것입니다. 여자의 입장을 볼 때 그 자리는 무척 외로운 자리일 것입니다. 여자가 장래에 갈 길은 자기 혼자 자주적인 입장에 서 가지고 가려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여자는 어차피 한 남자를 맞이해서 가야 할 게 아니예요? 여자는 부모의 슬하에서 자유스런 환경을 허락받고 살 수 있는 입장이 아니냐.

만일 하늘 뜻의 방향을 알고 그 거점을 이어받겠다고 하는 한 소녀가 있다면, 그 소녀는 자기의 생명 전체를 희생할 각오를 하지 않고는 그 거점을 이어받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당장 사지(死地)에 들어가는 입장에 있더라도, 당장 내 일신의 체면과 권위가 땅에 떨어져 짓밟히더라도, 그 거점을 당당히 이어받겠다는 마음을 가진 소녀가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뜻을 아는 남성들도 이어받기 어려운 자리요, 뜻을 아는 여성들도 이어받기 어려운 자리인데도 불구하고 한 소녀가 그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선다 할진대는, 그 자리는 백 번 살겠다는 결의보다도 천 번 죽겠다는 결의를 해야 되는 자리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도 하나의 소망의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됩니다. 내일의 소망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내가 길이길이 살겠다기보다도 현재의 생활 가운데서 천만의 희생, 만만의 희생을 다짐하고, 이것을 가려 갈 수 있는 길이 있으면 그것을 찾겠다고 결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고는 안 됩니다.

오늘날 인간을 대하여 손을 뗄래야 뗄 수 없는 하나님의 사정을 생각해 보게 될 때, 그러한 사연을 품고 있는 하나님은 우리 인류가 맞이해야 할 세계를 대표한 주인공이요, 나라면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주인공이요, 가정이면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주인공이요, 생명이면 생명을 대표할 수 있는 어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입장에 계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고독하시겠습니까? 그런 자리에 계시는 하나님은 행복한 것이 아니라 비참한 것이요, 그 입장이 무한히 고독한 자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고독의, 한의 절정을 헤아릴 수 없는 비참한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비참한 내정을 품은 하나님이 하나의 소녀를 보고 역사노정에 있어서 누구에게도 토로하지 못하고, 이 시대의 어느누구에게도 토로할 수 없는 내용을 가슴을 헤쳐 놓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을 찾을 수밖에 없다 할진대, 이는 말할 수 없이 억울한 자리요, 말할 수 없이 처참한 자리가 아니겠느냐 하는 문제를 우리는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만일 세계 전부가 반발하는 자리에 그런 하나의 소녀가 있다면, 하나님은 지금까지 배신의 역로를 참아 나오던 그 모든 억울한 심정을 털어 놓고 그 소녀와 더불어 가겠다고 세상에 없는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순간이 남아질 것입니다. 그러한 순간은 낮이면 낮, 밤이면 밤이라는 어떠한 시간을 넘어 우주의 심정을 에이는 서글픔이 엇갈린 시간일 것이요, 그 자리는 누구도 동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비참한 자리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소녀 자체가 하나님의 내정이 그러한 것을 알고 위로할 수 있는 자리까지 못 갔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소녀를 붙들고 다시 일어서서 뛰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계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러한 하나님을 맞기 위하여 가는 길이 종교의 길이요, 그러한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안식의 한 날을 개척하기 위해 싸워 나가는 생활이 종교인의 생활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