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집: 아버지와 그 나라 1964년 03월 2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26 Search Speeches

십자가의 길로 나아갈 때 모" 것이 이루어져

효자, 효녀, 충신, 열녀의 이름은 평탄한 자리에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길을 개척하기 위하여 우리 앞에서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신이 애쓰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뼈저린 사명을 짊어지고 가야 할 성도들입니다.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죽어가는 성도들을 눈을 감고 바라보아야 하는 하나님, 고통을 당하고 있는 예수님에게 그 고통에 대항하라고 할 수 없는 하나님, 이 하나님의 마음이 편안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시련과 핍박과 환난에 부딪치고, 사정의 틈바구니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이에 비례하여 하나님도 십자가도 가중되어 간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길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굶주림의 길을 가고 계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위하여 언제 정성 한번 들여 봤습니까? 좋은 것이 있으면 전부 도둑질해다가 자기 배만 채웠지요. 하나님을 위해 가는 길은 먹기 위해 가는 길이 아닙니다. 놀기 위해 가는 길이 아닙니다. 편하기 위해 가는 길이 절대로 아닙니다. 진정한 주인(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참다운 종이 되려면 썩어져 가는 몸을 버리고 참다운 종이라는 칭호를 받아야 됩니다. 모셔야 할 어버이가 있거든 그 아버지 앞에 딱한 자리에서도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딸이라 할 수 있는 칭호를 받아야 되고, 모셔야 할 군왕이 있거든 그 군왕 앞에 딱한 자리에서도 충신이라고 하는 칭호를 받아야 됩니다. 그래야만 원수 사탄이 점령할 수 없는 존재가 됩니다. 이러한 존재가 되면 다시는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한다면 잃어버리겠지만, 이러한 존재가 되고 나면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효자, 충신, 열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자리에서 참다운 아들딸을 찾겠습니까? 그 곳은 십자가 도상입니다. 결국은 십자가 도상에서 부르신다는 겁니다. 그 아버지를 따라 나서려면 십자가의 도상에서 인연맺어 내 사랑하는 아들딸이라는 칭호를 받아야 됩니다. 그러면 그것으로서 만사가 다 통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십자가가 있는 동시에 가정적인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야곱은 에서 앞에서 개인적인 십자가의 고개를 무난히 넘은 후에 가정적인 십자가의 길을 찾아 나섰던 것입니다. 가정적인 십자가의 길에서 승리한 후에는 민족적인 십자가의 길로 가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국가적인 십자가의 길로 가야 합니다. 그러기에 모세는 애급 땅에서 다시 국가, 즉 이스라엘 나라를 찾기 위한 십자가의 길을 향해 가나안 땅으로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의 길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책임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후에 오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수도 있는 조건이 성립된 것입니다.

민족적이요, 국가적인 십자가의 길에서 승리한 기반을 토대로 하여 세계적인 십자가의 길을 개척해야 할 것이 이 땅 위에 오셨던 메시아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러니 유대 나라와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인들이 하나되어 오시는 메시아를 믿어 주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사명을 다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민족적이요, 국가적인 기반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군왕의 자리에서 모세의 자리보다도, 야곱의 자리보다도, 낮은 자리로 떨어진 것입니다. 4천년의 고난 가운데에서 준비하여 세워 놓은 이스라엘 민족이 국가적인 기준에서 배반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가정을 떠나고, 종족을 떠나고, 민족을 떠나 광야로 나가게 된 것입니다. 사탄에게 끌려 광야로 나간 예수님은 그와 싸움을 하여 유대 민족과 하나님이 닦아 나온 4천년의 기반을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적인 기준에서 다시 찾아 나왔습니다. 영적인 판가리 싸움을 통해 승리의 기반을 조성해 나온 것입니다. 복귀의 길이 이런 길입니다.

이 시대의 복귀노정에 있어서 이제 우리 통일교회는 4년노정을 바라보고 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4년노정을 어떻게 갈 것이냐를 위해 기도하는 것보다도 4년노정 이후의 노정을 어떻게 준비할 것이냐를 위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4년노정은 필히 잘 갈 것이라 생각하고 4년 이후에 가야 할 길을 모색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