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0집: 행복의 본향 1969년 05월 17일, 한국 청주교회 Page #305 Search Speeches

오른편 강도와 왼편 강도로 가인 아벨 복귀를 한 예수

타락한 부모 아담 해와가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돌아가게 하려면 가인과 아벨을 중심삼고 아벨이 가인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돌아갈 수 있는 겁니다. 요것을 복귀하지 않고는 부모가 복귀 안 돼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지요? 「예」 타락한 부모 자체에서는 복귀할 수 없기 때문에 아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싸우는 거예요. 사랑의 열매가 뭐냐? 아들이 사랑의 열매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첫번 사랑의 열매는 사탄편 열매요, 둘째번은 아담의 아들인데 이는 본래 창조원칙에 있어서 타락하지 않아도 아담의 아들로 태어날것이기 때문에, 타락한 행동의 사랑이지만 사탄하고 사랑한 것보다는 총서받을 수 있으므로 둘째번 아들인 아벨을 하나님편 열매로 하나님편에 세웠다는 거예요. 가인은 사탄편이요, 아벨은 하나님 편에 세웠다는 겁니다.

이 둘을 갈라 가지고 싸우는 거예요. 싸우는데 에덴동산에서 이것(가인)은 천사장 편이고 이것(아벨)은 아담 편이기 때문에…. 천사장이 아담한테 굴복하지 않고 아담을 꺼꾸로 지배했다 이거예요. 이것을 탕감복귀하려면, 가인이 사탄편, 천사장편이므로 천사장이 아담한테 굴복하지 않은 것을 복귀하려면 천사장 편에 있는 가인이 동생 아벨한테 굴복해야 된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제물 드려 가지고 아벨에게 굴복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는 데도 불구하고 꺼꿀잡이로 쳐 죽였다 이거예요. 여기에서 문제가 벌어졌어요. 그렇게 망했다구요. 그런데 예수는 부모로 오기 때문에 가인과 아벨이 없어 가지고는 복귀가 안 되는 거예요. 그렇지요? 「예」 탕감복귀 된 아들딸을 여기에서 찾아야 된다구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이와 같은 기준을 무엇으로 세울 것이냐? 이것이 이스라엘 나라, 국가를 상대로 하는 거예요. 그래서 세계로 넘어가는 거예요. 이것은 로마예요. 그렇지요? 로마 국가가 가인과 같은 입장이고, 이스라엘이 아벨과 같은 입장인데 여기에서 로마가 때려죽이면 망한다는 거예요.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며 말씀하심) 결국은 어떻게 되었느냐? 국가적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복귀하려고 했는데 국가가 없어졌다 이거예요. 가인적 국가가 없어졌어요.

그다음에 교회가 없어졌어요. 가인적 교회도 없어졌다 이겁니다. 여기에 유대교가 아벨이 되면 이스라엘 나라가 가인이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점점 다 잃어버린 거예요. 유대교가 가인이 되면 요셉가정이 아벨이 되는 거예요. 가정적으로 상대할 수 있는 가인도 없어졌어요. 그리고 나중에는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열두 제자를 보면 이들은 이방사람이예요. 이방 사람을 중심삼은 가인이라구요. 이것도 다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가 세 제자를 가졌지만 가인 아벨 탕감복귀를 할 수 없었는데 어디에서 그러한 조건을 세됐느냐? 십자가상에서 가인 아벨을 복귀한 거예요. 오른편 강도와 왼편 강도를 중심삼고 복귀한 거예요. 그렇지요? 알겠어요?

어떻게 되었느냐? 가인이 아벨을 죽였다 이거예요. 사탄편은 왼편이예요. 왼편 강도가 오른편 강도를 쳤지요? 예수를 쳤지요? 그렇지요? 그러나 오른편 강도가 예수 편이 되어 가지고 왼편 강도를 쳤다 이거예요. 죽을 때까지 예수 편이었다 이거예요. 생명을 각오해 가지고 가인과 아벨형을 십자가상에서 왼편 강도와 오른편 강도를 중심삼고 세워가지고 승리의 기준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 기준이 없었다면 예수는 부활도 못 했다는 겁니다. 기독교는 아무것도 모른다구요. 세상의 기독교를 구해 준 자가 누구냐 하면 오른편 강도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사탄편에 있는 왼편 강도가 예수에게 하나님이 어디에 있다고, 예수 너는 큰소리하고 소문내고 돌아다니더니 뭐냐? 네가 뭐 하나님의 아들이야? 오늘 너와 내가 다른 것이 무엇이냐?' 하면서 조롱했지요? 그때 오른편 강도가 '야! 이 녀석아, 우리는 죽을 죄를 지어서 응당히 죽지만 이 사람은 죄 지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죽는 다. 이 사람은 죽을 사람이 아니다. 이 사람은 의인이다' 라고 운명할 때까지 예수를 옹호해 가지고 싸웠다는 겁니다. 여기에서 만약에 오른편 강도가 양보했더라면 예수는 완전히 부활을 못 한다는 겁니다. 영적 부활의, 영적 자녀의 승리의 터전을 닦았기 때문에 부활이 벌어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