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집: 모든 것은 선악의 싸움터를 넘어야 한다 1959년 12월 06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55 Search Speeches

우리의 욕망과 하나님의 사'

오늘날 우리 인간들은 어떠한 욕망을 품고 운명적인 복귀의 길을 가고 있느뇨. 모든 것을 내 것 만들기 위하여 가고 있습니다. '이 천지가 내 것이야. 이 하늘 땅에 있는 인류가 나의 형제야, 땅 위의 이념이 바로 내 이념이야, 어떤 주권자나 기업주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야'. 그 다음에는 '하나님도 내 것이야' 할 수 있는 자리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욕망은 어디까지 가야 그칠 것이뇨. 하나님도 내 것인데 하나님만 붙들고 무엇 할 것이냐. 하나님 심중의 사랑도 '내 것이야' 할 수 있는 자리까지 가야 모든 것이 끝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아세요? 말도 그럴 듯하지만 사실도 그렇습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는 권한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어서 오십시오' 할 때에 '오냐, 가마' 하시며 오실 수 있도록, 하나님을 불러 낼 수 있는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정을 내 것이라 하게 되면 가능합니다. '하나님 갑시다' 할 때 '오냐 가자' 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여러분 그렇잖아요. 심정이 하나되어 서로 그리워할 때는 오지 말라고 해도 따라옵니다. 하나님께서도 인간을 그러한 표준에서 대하시고 찾아 나오십니다.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아, 수천년 전부터 허덕인 이 한을 너희들이 풀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내 심정 전체를 너희가 차지하여 만물의 주인될 수 있는 모습이 될 때, 나에게 맺힌 한을 모두 잊을 수 있겠다'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성경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가 너희 안에 있다'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은 이 땅 덩어리를 마음대로 해 봐도 만족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흐루시초프니 아이젠하워 대통령이니 하는 사람들이 이세상을 자기들 무릎 아래 두고 '야 너희들 이것 하여라' 할 때 '예 하겠습니다' 하게끔 만들어 놓았다면 편안할 것 같아요? 편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최후에 하나님께서 '잘 싸웠다 이렇게 해라' 하셔야만 기뻐하게끔 지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왕자가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거기에서 만사는 해결됩니다. 우리가 그 자리에 들어가 6천년 한스러운 하늘을 대해 '아버지'하고 부르는 한 마디에 하나님의 6천년간 맺혔던 모든 한이 다 풀려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는 새로운 차원으로 비약하게 됩니다. 2천년 전에 오셨던 예수께서 너희는 물질을 붙들고 싸워라 몸을 붙들고 싸워라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나 예수의 신부된 것을 믿으라 하신 것은 고마운 일입니다. 정적인 심정의 인연을 맺고 있으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찾아오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또한 하나님도 인류를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어떻게 하는 사람이 선한 사람인가. 큰 것을 생각하며 가는 사람입니다. 애국자라면 자기의 가정을 버리고 자기 몸뚱이를 희생하더라도 삼천만 민족을 생각해야 합니다. 삼천만 민족을 자기 몸뚱이나 자기에게 속한 무엇보다도 더 생각하는 사람이 애국자요 충신입니다. 심정적으로 그렇게 생각해야 돼요. 충신 열녀 효자 효녀가 전부 이 코스를 거쳐야 됩니다.

최후에 이 모든 사탄세계의 조건까지도 청산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 무엇이냐. 어떤 잘난 사람도 아니요 인격자도 아닙니다. 어떠한 권세를 가진 주권자도 그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꼼짝 못하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지닌 사람이 전체의 중심이요 전시대사(全時代史)의 중심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