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집: 인내와 극복 1971년 05월 2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21 Search Speeches

행복을 소개해 줄 수 -" 이 세상

왜 그러냐? 타락한 결과의 세계요, 타락한 결과가 인연됨으로 말미암아 엉클어진 국가와 사회이기 때문에 하늘로 가는 길을 환영하고 옹호할 수 없는 것입니다. 타락 세계에서는 그 자체가 반발이요. 그 내용이 반발입니다. 이처럼 하늘길을 가려는 일체를 옹호하지 않는 반대적인 입장, 대립된 상태가 됨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행복를 찾아 나가고자 하는 사람 앞에는 백방으로 반대적인 요건이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것을 극복하고 타개하기 위해서는 비장한 결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비장한 결의를 하는 데 있어서 일대 (一代)만의 결의로 끝나 가지고는 안됩니다. 일대(一代)만의 결의를 함으로 말미암아 승리의 터전, 종족이면 종족권의 승리의 터전이 갖춰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일대 (一代)를 넘어 이대 (二次) 삼대 (三次) 혹은 역사시대를 거쳐 전통으로 남겨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승리의 터전이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을 역사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과거 선조들이 가졌던 정성과 피어린 투쟁의 기준을 언제나 유지시켜야 합니다. 그런 기준을 유지시켜 끌고 나가지 않고서는 그것을 현실적인 터전 위에 남길 수 없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런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계신 하나님은 불쌍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고단한 입장에 계시는 분입니다. 어떤 면으로 볼 때, 하나님은 원통하고 비참한 자리에 계시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에 뜻을 품고 왔다 갔던 우리 선조들은 사회로부터 환영을 받고 환경으로부터 옹호를 받는 자리에서 생활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사회와 부딪히는 자리, 언제나 몰리는 자리, 언제나 추방당하는 자리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러한 자리에 처하는 것이 정상적이지 환영받는 자리에 처하는 것은 오히려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사회에서 환영을 받고 사회와 호흡을 같이하는 것이 정상이 아니라 비정상이라는 것입니다.

사회에 호흡을 맞춤으로 말미암아 아무리 많은 국가와 세계가 움직이게 된다 하더라도 그 국가와 세계는 하늘의 행복의 요건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탄과 악의 내용을 그냥 그대로 접하는 터전 위에서 갖추어진 터전이지, 악을 청산지어 가지고 하늘만을 시작으로 성립된 터전이 아닌 것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시대로부터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불쌍한 운명을 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각자가 그런 입장에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세계가 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나를 환영하고 내 갈 길을 후원할 수 있는 세계가 못 되어 있습니다. 가면 갈수록 상충이요, 반발입니다. 여기서는 부딪쳐야 됩니다. 부딪치게 되면 둘 다 피해를 입지만, 어느 하나가 깨져야 됩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깨져야 되느냐? 선이 깨져서는 안 됩니다. 악이 깨져야 됩니다. 또 개인적인 악을 격파했다 하더라도 가정적인 악이 남아 있지 않느냐? 가정적인 악을 격파했다 하더라도 종족적인 악이 남아 있지 않느냐? 이 싸움을 어떻게 할 것이냐, 이걸 누가 격파할 것이냐가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