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집: 해원성사 1971년 01월 0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55 Search Speeches

신의 실존성

이렇게 모든 것들이 태어날 때부터 이미 누군가가 이것들이 무엇을 해야 된다는 것을 전부다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유물론자들은 `신이 뭐야. 물질이 전체의 중심이지' 라고 합니다. 그런 녀석들은 눈알을 빼버리라는 거예요. 어떻게 되는지. 그들은 모든 자연물은 적응하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도피적인 표현으로 적응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연이 그렇게 될 수 있느냐 이거에요. 그런 논리가 어디 있어요? 과학적이라는 것은 원인과 결과가 일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진화론자들은 아메바가 점차 진화해 가지고 고등동물인 원숭이가 되고 그 원숭이가 진화되어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사람이 사람 이상의 힘을 발휘하려면 그 힘을 어디서 보충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힘의 원칙이 그렇습니다. 힘이 작용을 하게 되면 반드시 소모가 됩니다. 여기에 힘을 보충해 주어야 또 작용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발전기를 두고 보면 들어오는 힘과 나가는 힘이 있는데 나가는 힘은 들어오는 힘보다 적습니다. 들어오는 힘과 나가는 힘이 같아질 수 있다면 그것은 힘의 세계에 있어서 혁명입니다. 여기에 휘발유를 공급하는 것도 힘이 자꾸 소모되니까 그 힘을 보충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작용을 하게 되면 소모가 벌어지는데 아메바가 작용을 해서 발전할 수 있어요? 그것은 논리적인 모순입니다. 아메바에서는 고등동물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려면 제삼권에서 보강해 주고 보급해 주는 힘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신이 모든 것을 알고 그렇게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 손이 하나는 바르게 되고 하나는 거꾸로 되어 있어 가지고 따로따로 움직인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우리 인체는 신비의 왕궁이요, 무궁무진한 지식의 원천이며, 힘의 조화의 원천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구조는 전부 다 과학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과학적이란 것은 이론과 상충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손가락 하나에 대한 연구를 해서 책을 쓴다고 해도 몇만 권을 써도 못 다 쓸 것입니다. 학박사라는 사람들, 지극히 시시한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여기 학박사님들이 왔으면 섭섭할는지 모르지만, 학박사들이 알고 있다고 하는 것들은 하나님의 오묘하고 무궁무진한 창조의 대진리 앞에 있어서는 하나의 먼지만도 못한 것입니다. 오늘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것도 상식적으로 여러분이 알아 두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절대자가 있다 하더라도 혼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자기에 대응할 수 있는 상대적인 여건이 있어야 됩니다. 조화라는 것은 혼자 벌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재미라는 것도 혼자 벌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행복 또한 혼자 벌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절대자 앞에는 절대적인 상대자가 있어야 되고, 절대적인 주체 앞에는 절대적인 대상이 있어야 행복이니, 조화니, 기쁨이니, 춤이니, 노래니 하는 것들이 있는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