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집: 우리와 복귀의 진로 1972년 09월 25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186 Search Speeches

식구란 한 사정과 한 심정- 묶인 사람"

여러분은 틀림없이 '통일교회 식구'라는 사람들입니다. 식구라고 하게 되면 한 집에서 살아야 되고 한 사정과 한 심정에 얽매여 가지고 살아야 할 입장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형제 가운데 한 사람이 병이 나게 됐을 경우 다른 형제들이 병난 형제를 염려해야 되고, 아무리 고립된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병난 형제의 사정에 동참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또, 부모 역시 병이 난 사정을 대해 가지고 방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동참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식구라면 어려운 일이나 기쁜 일을 막론하고 어떠한 사정이 있다 하게 되면 그 사정과 따로따로 갈라진 입장에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부모에게 슬픈 일이 있다면 그 슬픔은 반드시 자녀들의 슬픔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자기에게는 부모가 아무 관계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 말은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부모가 슬퍼하고 염려하는 일이 있으면, 그 자식들이 아무리 사방에 흩어져 있고, 또 그들이 갖고 있는 직무가 다르더라도, 그들은 자기가 처해 있는 입장에서 부모의 염려를 이어받아 가지고 같이 근심하게 마련입니다. 부모에 대한 효성의 마음이 간절한 자식일수록 비록 그가 다른 곳에서 일을 한다 하더라도 부모의 수난길을 벗어나 가지고 하루를 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식들 가운데서 부모에 대한 염려를 더욱 깊이, 더욱 많이 하는 자식이 있다면,그 자식은 부모 앞에 더 가까운 자식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슬퍼하는 내용을 깊이 알고 있는 자식일수록 그 부모의 슬픔이 해소되기를 일구월심으로 바라고, 자기가 일하고 있는 환경을 넘어서 그 근심된 사실이 해소되기를 바라는 것이 자식의 소원이 아니냐? 자기에게 슬픔이 있다 하더라도 자기의 슬픔보다도 부모의 슬픔이 더 빨리 해소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는 효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에게도 근심거리가 있고 자신에게도 근심거리가 있는데, '부모가 내 근심거리를 생각해 줘야지' 하며 부모의 근심거리보다도 자기의 근심거리를 더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부모와 하나되어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효(孝)의 원칙을 중심삼고 볼 때, 부모의 입장을 망각한 사람은 부모와 긴요한 자리에서 하나의 인연을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를 주장하고 자기의 슬픔을 알아달라고 요구하거나 부모의 슬픔은 제쳐 두고 자기의 슬픔만을 책임져 달라고 하는 아들이 있다면, 그는 효자가 못 되고 불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생활 주변에서 혹은 가정생활에서 수시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다운 형제란 어떤 사람이냐? 형제가 어려운 자리에 설 때, 그 어려움을 자기의 어려움보다 더 크게 느끼는 사람이 참 형제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또, 효자로서의 가치는 뭐냐? 자기의 어려움도 있겠지만 부모의 어려움을 더 염려하면서 자기의 어려움을 문제시하지 않고, 자기의 어려움 위에 부모의 염려를 더하여 염려하는 자리에 서더라도 이것을 당연한 일로 소화시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자리에서부터 효의 길은 시작되는 것이 아니냐? 자식이 부모의 어려움을 등한시하고 멀리하게 될 때, 여기서 결렬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효의 길이 아닌 불효의 길이 생기는 것입니다. 형제의 어려움을 자기 어려움보다 더 중요시하지 않게 될 때 형제지간의 관계는 소원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