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집: 인내와 극복 1971년 05월 2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50 Search Speeches

참음의 한계

참는 한계가 어디까지예요? 죽기 전까지예요? 죽을 때까지! 죽을 때까지 뜻을 위해서 싸우겠다고 맹세한 사람은 손들어 보라구요. 나 스스로 그렇게 맹세했다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그 외의 사람들은 생각도 안 해봤구만.

그러면 죽을 때까지다 하면 어떤 때가 죽을 때예요? 개인을 위해서 죽을 때까지입니까? 나 좋을 때예요? 그런 죽을 때가 어디 있어요? 죽을 때까지라는 것은 죽을 일들이 연방 생기는 때입니다. 아버지도 죽을 때까지, 아들도 죽을 때까지, 십대가 아니라 천대, 수천년 동안 죽을 때까지. 그런 역사적 전통을 받은 것이 기독교 사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역사는 순교와 수난의 피를 보여 준 역사인 것입니다. 죽음의 제단이 상속되어 나온 것이 기독교 역사입니다.

가정에 여덟 식구가 있는데 모두 죽고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합시다. 여덟 식구가 다 죽었는데 내 차례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는 내가 죽을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사람이 여기에 150명쯤 있는데 이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통일교회를 위해 싸웠는데도 다 안 죽었다는 거예요. 그게 죽을 때까지예요? 통일교회 교인들이 죽을 때까지 싸운다고 할 때는 150명이 하나도 안 남고 다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구, 다 죽고 나만 남았으니 나는 종자라도 해야지, 죽을 때까지라고 맹세를 했지만 하나님 용서하소' 하면 되겠어요? 망하더라도 혼자 남은 그 사람도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게 죽을 때까지입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통일교회가 망하면 되나, 종자라도 있어야지. 네가 남아 종자가 되겠소'해 가지고 자기는 안 죽겠다고 하면 되겠어요?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맹세했으면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딸이 굶고 뭐가 어떻다는 말을 해야 되겠어요? 큰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자기 여편네와 자식들을 잘 먹이고 잘 입히겠다고 해서 되겠느냐 말이예요. 선생님도 그 놀음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선생님이 걸어온 입장과 여러분의 현재 입장이 다릅니다. 사람이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걸어온 길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내려갔다가 현재의 입장까지 올라왔지만 여러분은 내려가지를 않았습니다. 내려가는 길은 몰랐어요. 그저 선생님 등을 타고 올라왔습니다. 이보다 좋은 데로 가려면 탕감조건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못가는 것입니다. 한번 죽었다는 조건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저 여러분이 하기 좋은 일을 해 가지고는 절대로 복귀가 안 됩니다. 통일교회가 민족적인 시대에 있어서 사명을 다하려면 종족적인 골짜기에 들어가 거기에서 극복해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개인적인 골짜기, 가정적인 골짜기, 종족적인 골짜기, 민족적인 골짜기를 거치고 현실적으로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탕감조건을 세우기 위해서 한 번이라도 그런 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부정적인 입장을 거치라는 것입니다. 그저 참고 참아야 합니다. 참지 못할 일이 수두룩하더라도 참아야됩니다.

칼이 있으면 배때기를 도려내 버리고 얼굴을 도려내 버리고 싶은 사람을 만날 때도 많은 것입니다. 그거 보면 선생님이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선생님은 성격이 참 급한 사람입니다. 옛날에 동네에서도 돈푼이나 있고 잘사는 사람이 못사는 사람들을 못살게 굴거나, 나이가 많은 녀석들이 나이가 어린 아이들을 억울하게 때리거나 하게 되면, 선생님은 복수를 하고 싶어서 밤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게 안 되면 분에 벅차서 못 사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을 보고는 못 견뎌요. 그런 성격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이런 일을 하려니 죽을 지경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까 탕감 효과율이 높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물에 물 탄 듯이. 도살장에 가는 늙은 황소처럼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건 별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꽤 힘들어요? 그런데 이건 팔팔 뛰는, 아예 견딜 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가 이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목사들의 강의를 다 듣고 있습니다. 옛날에도 내가 얘기했지만, '말을 이렇게 해, 이 녀석아' 하면서 욕을 퍼붓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무슨 잘못을 하게 되면 욕을 퍼붓거든요. '잘 만났다. 이 녀석들아' 하는 것이 인사가 되는 것입니다. 하늘세계는 ‘잘 왔어?’ 그러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쪽으로 나가야 합니다. 잘한 사람이 잘못한 사람들 한테 '아 미안합니다'라고 하는 법이 어디 있어요? 당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자세로 들이 짓밟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부작용이 벌어지고 마지막이 되는 게 아니냐 이겁니다.

내가 요전에도 모모 인사들을 만났을 때, '당신을 내가 만난 것은 당신이 필요해서 만난 것이 아니다. 나는 당신의 권위라든가 당신의 입장을 마이너스시키는 졸장부가 아니다. 당신이 나를 만나자고 한 것은 당신에게 내가 필요하기 때문에 만나자고 한 것이다. 당신 앞에 내가 마이너스 조건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들이 방문도 안 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