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집: 신앙자의 자세 1971년 04월 2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15 Search Speeches

"억울한 자리, 죄인의 자리- 서 보아야"

여러분은 빚진 자의 자세로 생활해야 합니다. 즉, 자기가 잘못했다는 입장에서 언제나 빚진 사람으로서 자기 스스로를 다짐할 수 있는 그런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느냐? 우리 앞에 사탄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공판정에 선 죄수와 마찬가지입니다. 검사가 조건이 없어서 여러분을 못 거는 것이 아닙니다. 판사가 판결을 내리는 데는 그 범죄 결과를 중심삼아 가지고 판결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범죄의 동기가 피동적이냐, 능동적이냐에 따라 판결에 천지의 차이가 벌어지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가 주범이냐, 혹은 용의자냐에 따라 천지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행동은 같이 했지만 동기에 의해서 하늘땅의 차이가 벌어집니다. 그렇지요? 동기가 나라를 위한 애국심에 불탄 것이라면 그것은 도리어 하늘 앞에 칭찬 받을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죽였다는 것은 원칙을 두고 보면 죄입니다. 그러면 나라를 위해서 나라의 원수를 죽였을 때도 죄가 됩니까? 왜 살인을 했느냐 할 때 '이 사람은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이기에 그 피해가 전국민 앞에 미칠 것이 틀림없지 않느냐? 그래서 내가 죽였다'고 한다면 공판에 못 거는 것입니다. 걸었다 하더라도 도리어 칭찬의 결과는 될 수 있어도,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는 자리에는 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동기에 의해 천태만상으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누가 있느냐? 사탄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말 한마디하게 될 때에도 반드시 그 말을 걸고 늘어지는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자기가 살기 위해서 자기를 변호하기 위해서 '넌 내 것이다' 하고 거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을 변호하고 하나님과 하나되면 '당신은 하나님 것이다' 하는 겁니다. 여기서부터 갈라지는 것입니다. 이런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끝내는 변호사와 검사의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엄연한 하늘의 공의의 법도로 치리하시는 하나님 앞에 있어서 공판정에 선 죄수와 같은 입장입니다. 전부 다 그렇다는 거예요.

기도할 때도 그렇습니다. 기도할 때에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눈물 없이는 회개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형편이 무인지경이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 자신도 그렇습니다. 내가 통일교회 책임자라는 생각을 안 한 사람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잘못했으면 그 잘못한 기준을 중심삼고 무자비하게 자신을 추궁합니다. 그렇게 해야 되는 것이 아녜요? '나는 누구의 아버지다. 나는 판사의 아버지다'라고 한다고 용서가 되는 거예요? 안 되는 것입니다. 무자비한 것입니다. 공판정에 서게 되면 언제나 원수입니다.

내가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내 일생에 몇 번씩 공판정에 설 수 있었던 사실입니다. 이것으로 큰 경험을 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러한 경험을 통해서 악한 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조건을 걸려고 하는 검사의 마음, 악한 사람이 아닌데 악하다고 조건을 걸고 들어서는 것을 느껴 봐야 합니다. 선생님에게 그것은 좋은 추억이었습니다. 또, 변호사가 변론하는 데 있어서 자신은 자신의 죄 값이 사형임을 당연한 것으로 느끼는데 변호사가 그 생명을 구해 주기 위해 변증할 때에 느껴지는 죄스런 마음도 느껴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자리에 섰을 때에, 여러분을 놓고 예수님과 사탄이 일생 동안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통일교회 선생님과 사탄이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각에 처한 운명의 판가름 도상에 있어서 자기의 생명 되시는 분, 생명의 발판이 되시는 분이 계시니 여러분 앞에 천번 만번 폭풍이 불어치더라도 그것을 감사해야 됩니다. 보답할 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그런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런 자리에서 변론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뻔뻔하게 발뺌하고, 자기는 잘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내가 한꺼번에 큰 도가니 속에 집어넣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언제나 빚진 자의 자세를 지녀야 됩니다. 빚을 져 보라구요.

또, 어떤 때 억울한 심정을 갖게 되느냐? 여러분이 어쩔 수 없는 자리에 몰려 가지고 남의 물건을 훔쳐 죄를 졌다고 합시다. 어쩔 수 없이 훔쳤다는 거예요. 그 동기를 보면, 틀림없이 천배 만배 갚아 줄 것을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했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아시는데…. 어쩔수없이 그럴 수도 있잖아요? 나 자신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 보다 넓은 공의의 뜻을 위해서 그렇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은 협력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걸 알겠어요? 오히려 큰 수욕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할 수 없이 했는데 수욕을 당했을 때 그때의 그 슬픔, 그런 자리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의 슬픔은 곱절의 슬픔입니다. 보다 선한 사람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다 나에게 요런 물건이 없었느냐? 아무것도 아닌, 서푼 짜리밖에 안 되는 물건으로 인한 사건이 이렇게 내적으로 치명적인 상처를 줄 줄이야…. 그러니 억울하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여러분은 공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선한 환경을 이루어야 됩니다. 만일에 악한 일로 억울하고 분함을 느낄 때에는 하나님 앞에 '이것은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큰 것을 위해서입니다'라고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는 하나님께서 후대에 반드시 천배 만배 갚아 주실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살아야 용서의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악이 아무리 참소하는 자리에 섰다 하더라도 당당한 것을 느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뜻을 가지고 사탄세계에서 빼앗아 오는 것은 죄가 안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데 빼앗아 오는 데 있어서의 형태는 싸워 가지고 빼앗아 오는 것과 몰래 빼앗아 오는 것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알겠어요?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알게 빼앗아 오는 방법과 모르게 빼앗아 오는 방법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역사 가운데에서 그런 일을 하고 계십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하는 것이 그 사람을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에게 복을 주기 위한 것이라면 걸리지 않습니다. 알겠어요? 아까 말한 것이 이것입니다. 틀림없이 천배 만배 갚아 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입장에서 상대에게 행동했다면 행동한 자체는 용납될 수 없는 것으로서 지탄받더라도 그 내용에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공인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을 중심삼고 복을 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놀음이 있습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은 이런 원칙을 알았기 때문에 복귀섭리를 해 나오는 과정에서 그런 일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을 고생시키는 것입니다. 고생하라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내가 여러분을 고생시키는 것입니다. 고생시키는 자체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생시킨 것을 천만 배의 대가로 갚아 주게 될 때에는 고생을 시켜도 타격을 안 받습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기준을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