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집: 수난의 정상에서 1971년 05월 05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66 Search Speeches

복귀의 길은 죽은 자를 살려 주기 위한 길

그렇기 때문에 복귀의 천국을 안에 두고 가는 우리가 복귀의 과정을 거쳐 천국에 이를 때까지는 가는 길이 결코 평탄할 리 만무하다는 것입니다. 십년 동안에 갈 것이냐. 이십년 동안에 갈 것이냐를 결정할 때. '이십년이 걸리면 너무 늦다. 십년 만에 가야 되겠다'라고 생각한다면 이십년 동안에 갈 고통의 2배를 당하면 그만큼 단축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 후손들이 천년 한을 벗어 놓고 해방의 아들딸로써. 아버지의 영광된 아들딸로서 하늘 나라에 갈 수 있는 무리가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오늘의 이 자리는 내 당대에 몇배의 수난의 대가를 치름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수난을 감소시키고 탕감시킬 수 있는 수고의 행로를 가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탕감의 자리, 복귀의 자리는 수난의 정상에 서지 않고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통일교회가 어느만큼 올라왔느냐? 민족을 중심삼고 이 일을 해온 통일족속은 과거의 유대교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기성교회가 왜 하나님의 은혜권에서 떨어지게 되었느냐? 그것은 통일교회를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탕감권에 참여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인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기성교회가 통일교회보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 기성교회가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탕감의 자리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기성교회에 하나님의 은혜가 떨어짐으로 말미암아 통일교회가 두드러지기 때문에 그 나라는 통일교회가 책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족적 권내에 있으면서 민족적 사명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성교회를 밟고 올라서 차 버리고 갈 것이 아니라, 데리고 가야 합니다. 죽은 자를 살려 주기 위한 길이 복귀의 길인 것입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넘어서면 기성교회가 우리의 발에 채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기성교회를 차버리고 갈 것이 아니라, 사지에 있는 것을 일깨워서 함께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에게 기성교회를 전도해야 하는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