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집: 통일교회의 길 1963년 10월 18일, 한국 광주교회 Page #47 Search Speeches

하늘뜻을 대하" 지도자" 고독하고 불쌍한 사람

지도자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민족은 그렇게 사태가 급박한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400년 동안 수고하던 바로 궁중보다야 아무래도 낫겠지' 이러한 생각을 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지도자의 서릿발 같은 최후 통첩의 명령이 내릴 때, 진군하라는 명령이 나오게 될 때, 그 명령 앞에 일치단결하여 그 자리에서 기동을 하기 시작했던들 그들은 순식간에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복귀해 차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쳐서 다리 아픈 것을 못 참고 입을 벌려 하는 말이 `모세는 무심하지. 동정도 없지' 이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저 목석 같은 사람' 그런 말을 하다가 그 환경이 점점 심해가니 `저 목석 같은 무지한 자식' 이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오죽 안타까우면 바로 궁중에서 400년 동안 죽어가는 60만 대군을 끌고 나와서 광야에 갖다 놓고 시내산에 40일 동안 무얼하러 올라갔던고? 편하려고 올라간 줄 알아요? 무엇 때문에 40일 금식을 했던고? 최후의 각오와 최후의 명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명령 앞에 불복종하니 망할 것을 아는 모세는 `이들이 명령에 복종하지 않더라도 망할 길을 피해 가게 해주시옵소서' 하고 간곡하게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모세의 신세를 안 이스라엘 민족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도자라는 것은 고독하다는 거예요. 남 모르는 가운데에 그 민족 앞에 다가오는 시련과 폭풍우 앞에 시달리면서 그 모든 거센 환경의 원수를 대하여 홀몸으로 가려 싸워서 승리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있는 자가 지도자인 것입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불쌍하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못나서 불쌍한 것이 아니라, 지도받는 이스라엘 사람 때문에 불쌍한 것입니다. 따르고 있는 민족이, 알아 주어야 할 이 민족이 알아줘야 할 정경을 몰라주는 입장에 서게 될 때 하늘은 `이놈들아!'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동정하여 모세를 보내 권고함에도 불구하고, 천신만고 수고한 심정에 사무쳐 최후의 선언과 같이 절규하는 그 모세의 부르짖음 앞에 민족이 반항하는 입장에 서게 될 때에, 하늘인들 그 민족을 앞에 내세워서 끌고 갈 수 없는 입장에 서는 거예요. 모세를 내세워 권고하는 하나님의 마음, 모세가 간곡히 외치던 마음, 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외치던 간곡한 모세의 심정이 하나님의 마음에 사무치게 될 때에, 모세의 외침이 복으로 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로 변해 전부 때려부수게 되었던 것입니다. 명령하기를 가나안 복지의 선민이라고 주장하면서 고이고이 뽑아서 내보낸 광야의 이스라엘 민족 60만 대중이 광야의 독수리 밥이 된 처참한 정경을 우리들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얼마나 재촉하고 싶었을까요? 모세를 조종하는 하나님은 얼마나…. 그저 지금과 같이 입을 다물어야 되겠나요, 입을 벌려야 되겠나요? 대답해 보라구요. 입을 다물어야 돼요, 벌려야 돼요? 「벌려야 됩니다」 틀림없이 벌려야 돼요.

아버지께서 6천 년 동안 아담 해와를 잃어버리신 그 비참한 정경을 여러분은 원리를 배웠어도 모를 것입니다. 4천 년 복귀의 한스러운 노정을 거치고 거쳐 선민 이스라엘을 품고 부대끼던 아버지입니다. 노아로부터, 아브라함, 야곱, 모세 시대를 거쳐 4천 년 역사를 붙안고 부대끼던 아버지예요. 이스라엘이 슬픈 날을 맞이하면 그날은 아버지의 슬픈 날이었습니다. 슬픈 민족의 사정은 아버지의 민족적인 사정이 되었고, 그 민족의 처참한 광경은 전체가 아버지의 처참한 광경으로 반영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책임진 그런 하나님이 되었던들 무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럴 수 없는 하나님이 된 것이 원한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내적인 원수들은 손을 대고 하늘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외부에 머물러 있는 수많은 원수들은 조롱하나니 그 조롱의 아픈 상처를 더듬어서 쓰러져 가는 이 민족을 수습하기 위해 애달파하며 바로 궁중에서 몇억천만 번 눈물 흘리는 사정에 처했던 모세를 누가 알아주었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은 외로우신 분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몰라줘도 몰라주는 자리에서 외로움을 당해야 할 하나님이요, 이스라엘 민족은 배반을 해도 배반을 그대로 받으면서 그들을 위해 또 눈물지어야 할 하나님입니다. 이런 사정을 누가 알아주었느냐?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수많은 민족들을 거치고,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거쳐 그래도 울타리를 치고, 그들을 맞기 전에 선지자를 대신 탕감의 제물로 하여 한 세기 세기, 한 시대시대 넘어갈 적마다, 이스라엘 민족이 당장에 원수의 조롱 앞에 사라져 멸망해야 할 때마다 하늘은…. 그들이 매맞는 대신 하나님은 택한 자를 세워서 맞게 하는데 그 매는 하나님이 맞는 거예요.

그리하여 수많은 역사노정 위에 선지선열을 보내 민족의 울타리로 삼기 위하여 제물삼아 사라져 간 수많은 역대의 우리 조상들이 있음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눈물을 지을 적마다 하늘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 슬픈 것이요, 그들이 고통을 당할 적마다 이 민족에 대한 저주의 한이 마음에 사무치지만, 복수하여야 할 원수임에도 억제하여 이들을 찾아와야 할 하늘의 사정을 여러분들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통일의 신도들은 그걸 알고 있습니다. 불쌍하신 하나님이예요. 또한 하늘의 천국이념을 바라보고 지도하는 하늘의 지도자들은 불쌍한 사람들이예요. 그렇다고 오늘 선생님이 여기에 와서 여러분들 앞에 어떠한 지도적인 책임을 짊어졌다고 동정받기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사실이라구요. 좋은 자리에 있으면 선생님이라고 할 줄 알아요. 만민이 따르고, 만민이 추앙하는 자리에 있어서는 섬길 수 있는 태도를 갖추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줄 알아요.

예수님 당시의 예수님의 일신을 두고 보더라도 그 시대적인 정상으로 보면, 모든 환경이 유리하게 되었으면 예수의 제자가 안 될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살인 강도까지 예수를 환영하겠다고까지 했고, 세리와 창녀까지도, 어느 누구나 다 그랬습니다. 그러나 사태가 불리해 들어가고 하나 둘 추풍낙엽과 같이 떨어지는 무리가 생겨 예수를 배반하는 무리가 많아지게 될 때, 그 무리 앞에 예수를 뒤로 두고 가는 무리를 붙드는 무리가 얼마나 많았던고! 벳새다에서 오병이어(五餠二魚)로 5천 여 무리를 먹이던 그때에 진탕 먹고 좋다고 찬양하면서 당신이 메시아라고 신봉하던 그런 무리들은 다 어디 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