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집: 아버지,나는 무엇을 하였나요 1960년 02월 2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45 Search Speeches

아버지의 심정을 같이 느껴야 하" 아""

여러분이 자고 있는 그 시간에 하늘이 여러분을 몇 번이나 찾아오셨는지 알아요? 나 한 사람을 찾아 세우기 위하여 몇 백번, 몇 천번을 시늉으로 혹은 음성으로, 비유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몰랐습니다. 6천년 동안이나 몰랐어요. 이제 우리는 그러한 아버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 한 자체를 찾기 위하여 하늘이 이렇게 이렇게 수고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도 자식들을 길러 봤지요? 사랑하는 자식이 원수의 품에서 처참하게 유린당하고 있는 것을 보는 부모의 심정은 어떠할 것 같아요? 기가 막힐 것입니다. 자식을 대한 여러분의 심정이 그러하다면 그 심정은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출처 없이 나올 수 있겠어요? 하나님이 그러하시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부모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하나님께서는 어떠하시겠습니까?

그러기에 여러분, 우리 아버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떠한 아버지냐? 역사노정에서 제일 비참하게 걸어오신 아버지이심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노정에 있었던 어떠한 참사 이상의 참사를 당해 나오신 아버지이심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슬픔과 고통과 절망과 죽음의 울타리에서 허덕이는 자식을 바라볼 때 '너희들 잘하는구나' 하는 하늘이 아니었습니다. 슬픔에 사무친 자식을 구하기 위해 더 슬픈 자리에 계셨으며, 고통의 자리에서 신음하는 자식을 구하기 위해 더 고통스런 입장에 계셨던 아버지셨습니다. 또한 죽음으로 사라지는 그 아들을 구하기 위해 죽음의 자리도 개의치 않은 아버지이신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길을 가다 허리가 굽은 불쌍한 노인을 보게 되면 '내 아버지도 저런 모양으로 찾아오셨겠구나'하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또 부풀은 노동자의 손을 보게 될 때도 '아들을 찾으려는 내 아버지는 저 이상의 모양을 하셨겠구나' 불쌍한 거지를 보게 될 때도 '이 거지는 거지가 아니라 내 아버지구나' 하며 머리 숙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아시겠어요? 보잘것없고 가련한 인생이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심정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가 내 아버지라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고 자기의 처지와 자기의 위신을 초월하여 행동할 수 있어야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성경 가운데도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 :37-40)"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앞서 말씀드린 그 경지에 도달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심정이 통하면 원수가 없습니다. 빈부귀천도 없습니다. 천한 길을 거쳐 찾아오신 아버지 앞에 내 위신과 체면을 잊어버리고 머리 숙여 흐느껴 울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 땅 위의 어느 곳을 가더라도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알고 보니 예수님의 생애가 이러했습니다. 이 말은 추상적인 말이 아닙니다. 사실적인 말입니다. 비단 이 사회에서 살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국가나 민족 앞에 역도(逆徒)로 몰려 철창에 갇히거나 교수대에서 이슬같이 사라지는 사형수를 대해서도 하늘은 그러한 입장에서 대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하늘과 끊어질 수 없는 천적인 인연이 있기에, 자신이 당하는 고통도 자신의 고통이 아님을 알아야 됩니다. 하늘은 이런 길을 거쳐 오십니다. 저는 한 때 사형수와 함께 감옥에 있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 그를 붙들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내 아버지께서는 이런 아들딸을 붙들고 이 시간도 통곡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그런 마음을 억제할래야 억제할 수 없어 폭발시키는 사람, 그런 심정을 가진 사람이 천성의 길을 가는 아들딸입니다.

이 길은 죽음의 길입니다. 이 길을 가려면 하늘을 배반하는 무리와 생명을 각오하고서라도 싸워야 합니다. 그런 심정의 소유자가 교회에 한 두 명만 있더라도 나는 그 편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이 몰리고 있는 통일교인 입니다. 통일교회를 이끌고 가는 저도 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이 시간도 그들과 더불어 눈물짓고 있습니다. 이런 자를 배반한 자는 아버지를 배반한 자요, 아버지를 배반한 자니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살아 있는 사탄입니다. 그들이 하늘의 최후의 판결을 받을 날, 저주받을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