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집: 참된 사람들 1971년 02월 11일, 한국 마포교회 Page #308 Search Speeches

인간의 감정은 시간과 환경의 변"- "라 변해

우리 인간은 누구나 다 참된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양심의 가책이 없으면 누구에게나 떳떳한 자세를 갖게 됩니다. '내가 뭘 잘못했느냐? ' 하며 당당코 그 환경 있어서 자기의 입장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입장을 부정하면 부정하는 그 여건과 투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입장에서 주장하는 그 자리가 과연 역사가 보장하고 시대가 보장하고 미래가 입증할 수 있는 참된 자리냐? 이런 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루를 두고 보면 아침이 있고, 낮이 있고, 저녁이 있고, 밤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침 기분하고 낮 기분하고 저녁 기분하고 밤 기분하고 사람 자체는 마찬가지인데 느끼는 감정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태양이 아침에 동녘에서 솟아오르게 될 때 그 광명한 빛을 바라보는 기분은 저녁에 석양을 바라보던 기분과는 다릅니다. 그때의 내 마음과 내 모든 감정은 그 태양과 더불어 달라지는 것입니다. 나 자체가 변하지는 않았지만, 내 모습이 변하지는 않았지만 환경의 변화에 따라 내 감정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낮이면 낮을 중심삼고 다르고, 저녁이면 저녁을 중심삼고 다르고, 밤이면 밤을 중심삼고 다릅니다. 또 보통 환경에서 느끼는 감정하고 명승지에 가서 느끼는 감정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혹은 산꼭대기에서 느끼는 감정, 산골짜기에서 느끼는 감정, 평지에서 느끼는 감정, 광야에서 느끼는 감정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 자기를 중심삼고 절대시하고 좋고 나쁜 것을 판가리할 수 있는 주체성을 주장하고 싶어하는 그 사람이 서 있는 자리와 그 뿌리는 어디에 두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오늘의 이 시대에 산다고 해서 갑자기 비약적인 존재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역사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거예요. 과거로부터 역사성을 지니고 오늘 현재의 자기라는 존재가 형성된 것입니다. 자기라는 존재를 생각할 때 여기에는 반드시 자기와 관계되어 있는 세계가 있는데, 그 세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그 인연의 세계를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반드시 부모의 인연을 따라가게 됩니다. 또, 나를 중심삼고 볼 때 여기에는 친척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형제의 인연을 중심삼고 친척이라는 인연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인연을 넓혀 가게 되면 그것이 하나의 씨족이 되고, 민족이 되고, 국가가 되고, 또 더 넓혀 가면 세계가 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주장한다는 것은 그러한 인연을 부정하고 그러한 관계를 부정하는 자리에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연과 관계된 석상에서 주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적인 배경에 따라 그 주장하는 표준이 달라지고, 국가적인 입장에 따라 주장하는 표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선악에 대한 관도 그 입장과 환경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왜정 때에 일본에서 공산당은 용허될 수 없었습니다. 지금처럼 정당을 갖고 백주에 공산당을 선전할 수 있는 자유환경이 부여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달라졌습니다. 어떻게 달라졌느냐? 공산당 자체가 달라진 것도 아니고 일본 민족이 달라진 것도 아닙니다. 그때의 정치적인 방향이라든가 환경이 달라지면 그 결과에 미쳐지는 내용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학창시절에는 공산주의자하고 친구였습니다. 일본 천황 유일주의를 타도하기 위해 투쟁하는 데에 있어서 공동 목표 아래 공동전선을 펴나갔습니다. 그때는 그들이 친구 중의 친구요, 없어서는 안 될 동지 중의 동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왜 갈라졌느냐? 그들과 우리가 대하는 방향과 목적이 상반되기 때문에 갈라진 것입니다.

이렇게 되게 될 때 여러분들이 일생 동안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나는 대한민국 백성으로 태어났다. 아무 문중의 아들딸로 태어나서 남부럽지않은 생활을 하고 있다. 양심적으로 볼 때 가책받을 아무런 내용이 없다. 이렇게 살면 옳지 않으냐'라고 판단한다고 합시다. 그것이 옳다고 하는 것은 그때의 환경적인 인연과 내용을 중심삼고 말할 뿐이지 전체의 환경 적인 내용과는 관계없는 자리에서 말한 것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하루하루의 생활을 중심삼고 좋다 나쁘다 하는 말을 하지만 여러분 자신이 '나는 이것으로 만족이다. 이 이상 더 좋은 것은 원치 않는다' 하는 사람이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다다. 이것만으로 나는 그만이다' 하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보다 좀더 가치있는 것, 좀더 행복스러운 것, 좀더 귀한 것, 좀더 무한한 가치의 내용을 지닌 것을 찾고자 할 것입니다.

그것을 찾는 데는 자기의 생활권내에서, 집안에서, 사소한 살림살이에서, 아내와 자식과 사는 그런 관계에서 찾지를 않아요. 안목을 크게 가지고 대한민국적으로 그것을 찾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래도 그것을 찾지 않은 사람보다 그 시대에 있어서 뭇사람들이 바라볼 수 있는 중심이 될 수 있고, 뭇사람들을 지도할 수 있는 중심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찾지는 못했지만 찾으려고 하지 않은 사람들보다는 나은 자리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느낀 바와 자기 나름대로의 아는 바를 중심삼아 가지고 어떤 환경 앞에서 자기를 중심삼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 생활을 살펴보면 현재의 입장에서 행복해하고, 현재의 입장에서 만족하려고 합니다. 그것을 확대시켜 가지고 세계적으로 행복해하려고 합니다. 더우기나 요즈음 세계적인 정세가 우리의 생활권내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20분 남짓한 시간이면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직접 우리의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세계가 형성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후에 우리가 살아 나가야 할 인생행로에 있어서는 대한민국을 위주한 내용을 가지고 '좋다'고 확정한다면 이건 세계적인 축에도 못 들어갈 것입니다. 그런 때가 우리 눈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계적이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이 경제부흥을 중심삼고 중진국을 표준해서 나가고 있으니까 1975년도를 넘어설 때는 중진국이 될 것이다'라고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최고의 선진국이 결정되어 가지고 거기에서 중진국이라는 것이 형성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