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집: 주관성 복귀 1971년 10월 0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8 Search Speeches

통일원리가 제시하" 소망의 기준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현재 여러분이 처해 있는 자리는 어떠한 자리겠느냐? 우리 본성의 어떠한 중심이 있어 가지고, 그 무한한 가치의 중심을 기점으로 생각해 볼 때 현재에 도달한 나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멀 것이냐? 이제부터 우리가 가야 할 노정, 우리 원리가 지시하는 노정은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 천주복귀노정까지 있습니다. 천주복귀만 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중심삼고 절대자 앞에 상대적 절대권을 갖추어 가지고 통일성을 기할 수 있는 자리까지 우리는 바라보고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생각해 볼 때, 통일원리가 제시하는 소망의 기준은 지금까지 역사상에 있었던 모든 사상이 제시한 이상의 기준이라고 우리는 자부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생각해 보게 될 때, 하나의 원이 그려지기 전에, 하나의 평면이 그려지기 전에 하나의 선을 그어야 됩니다. 선을 긋는 데 있어서는, 혹은 인간의 본성을 놓고 보면 출발된 본성의 기원이 되는 한 점이 있을 것입니다. 또 그것이 한 점이라면 인류가 바라는 소망의 종착점이 있을 것입니다. 그 종착점이 또 한 점이라면 그것을 이을 수 있는 선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 선이 곡선이 되어야 되느냐, 직선이 되어야 되느냐? 그것은 곡선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먼저는 직선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직선을 그어야 합니다.

직선을 긋는 데 있어서는 그냥 그을 수 있느냐? 그냥 그을 수 있다면, 만일에 모든 존재의 출발이 하늘로 말미암아 되어졌다 할진대, 그 직선을 그냥 그대로 그을 수 있다면 하늘의 슬픔이니 탄식이니 혹은 고통이니 하는 명사는 역사상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종교라는 하나의 테두리가 생겨나서 하늘을 추앙하는 놀음은 필요 없을 것입니다.

기원에서부터 결과까지 직선을 자유롭게 그을 수 있는 기준이 되었더라면, 오늘날 하나님도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존재하고 있는 세계는 그 직선을 따라서 가게 되어 있지, 일체의 어떠한 존재라도 그어 놓은 그 직선을 넘을 수 있는 힘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그러한 기준이 세워져 있다면, 어느누구든지, 어떠한 존재든지 자동적으로 소망의 자리에 처해 있는 것이요, 이상의 자리에 처해 있음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미래의 소망의 자리로 갈 수 있을 것이로되 그렇지 못한 사실을 보게 될 때, 이 직선이 그어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원인과 결과의 기준을 이을 수 있는 직선이 그어지지 않은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직선은 누구로 말미암아 그어질 것이냐? 직선이 그어지기 위해서는 원인과 결과의 소성을 언제나 연결시킬 수 있는 하나의 중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여러분이 원리를 배워서 아는 것처럼 우리 인간은 영적인 세계를 총합한 실체상이요, 육적인 세계를 총합한 실체상입니다. 영적·육적 세계가 하나의 사람을 중심삼고 총합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을 소우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소우주라고 해서 단순히 작은 우주라는 것이 아닙니다. 핵(核)을 대신할 수 있는 입장에서 소우주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직선을 긋되 어디를 통하여 그어야 되느냐? 반드시 사람을 가운데에 놓고 그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만약에 원형에다 직선을 긋는다면 이런 직선을 긋습니다. 이 중앙선을 긋기 전까지는 천갈래 만갈래의 선(線)이 있습니다. 선을 그을 때 이런 선을 긋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최고의 선을 그어야 되는 것입니다. 최고의 선이 어디냐? 그 최고의 선은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중앙점을 통한 선입니다. 최고의 선은 반드시 여기에서 그어지는 것입니다. 중앙점을 통해야만 최고의 선이 그어진다는 것입니다. (칠판에 그리면서 설명하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