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집: 해원성사 1971년 01월 0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20 Search Speeches

기도

[기 도]

아버님! 이제 저희들은 아버님의 한이 무엇인지, 예수님의 한이 무엇인지, 이스라엘의 한이 무엇인지, 인류의 한이 무엇인지 알았사옵니다. 저희들은 예수 가정으로 말미암아 저끄러졌던 모든 것을 식구의 사연 가운데 재현시켜 탕감하기 위한 충효의 도리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을 확실히 알았사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 목적도 이것을 위한 것이었고, 예수님이 죽은 것도 이것을 성취하지 못하였기 때문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기필코 죽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아버님, 2천년 전 이 땅 위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불쌍했던 환경을 책임질 수 있는 개개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들이 세계적인 판도를 갖추어 가지고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평면적으로 진군할 수 있고 총출동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했사옵고 부끄러운 전투가 아니라 영광의 전투를 할 수 있는 때가 왔사옵니다. 힘과 기력을 다하여서 71년도에는 아버지 앞에 더더욱 충성하고 효도하는 모습이 될 것을 약속하였사오니 이 약속을 받아 주시옵소서. 부디 그 마음과 몸을 친히 당신의 장중에 두시어서 최후의 승리를 결할 수 있는 아들딸의 인연을 고이 남길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아버지의 사랑하는 자녀가 될 수 있고 사랑하는 백성이 될 수 있는 거룩하고도 놀라운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30여 평생을 어느누구도 알지 못하는 외로운 생활을 하셨고, 아버님만이 아시는 심정을 더듬으시면서 믿을 수 없는 인간은 대하여 믿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1971년 들어 첫번째 맞는 이 거룩한 성일을 저희들이 찬양하고, 아버지 앞에 봉헌하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또한 배반하는 무리들을 생명을 걸고 아버님 앞으로 돌이키지 않으면 안 되었던 불쌍한 예수 그리스도의 한과, 그가 그러한 자리에 놓여짐으로 말미암아 맺혀진 아버님의 한과 이스라엘의 한을 풀기 위해 지금까지 인류 역사는 탕감의 대가를 무한히도 치러 나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러한 탕감노정이 저희 일신에서 빚어지지 아니하고, 역사시대 선조들의 살을 저미고 피 흘리는 자리에서부터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계속되어 왔사오며, 그 모든 희생의 대가를 치른 공로로 말미암아 보잘것없는 저희들이 아버지 뜻 앞에 설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사옵니다.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과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을 같은 은사로서 품어 주시옵고 사랑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

아버님께서는 얼마나 눈물을 흘리셨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은 만민을 품으시기 위하여 얼마나 피를 흘리셨사옵니까? 또, 이 땅에서 뜻을 따라나오던 수많은 백성들은 얼마나 숱하게 죽음의 길에서 사라져 갔사옵니까? 이렇게 비참하고 이렇게 한스럽게 이끌어져 온 기독교 역사 위에 오늘날 세계를 대표한 자리에 선 통일의 무리, 삼천리 반도에서 민족의 환경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 거할 수 있는 환경을 갖지 못하여 외로움의 길을 더듬어 오던 불쌍한 통일의 무리들을 중심삼고 이와 같이 모일 수 있게된 것을 생각할 때, 이 모든 공적의 터전과 이 모든 실적의 내용은 아버지가 하신 수고요, 아들이 흘린 피요, 수많은 우리 조상들과 형제들이 치른 순교의 대가인 것을 아옵니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할 때 진심으로 감사드리옵니다.

아버님, 그와 같은 결과적 존재인 나 자신은 아담 가정에 있어서 가인 아벨을 죽이는 그러한 정경을 제삼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형제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고, 내 일신을 희생해서라도 그 길을 막고 그 길을 대신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이 아담 가정의 가인 아벨과 같은 운명의 길을 가지 못한 한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노아는 뜻 하나를 중심삼고 그렇게도 처참했던 환경 속에서 외로움의 행보를 10년 세월도 아닌 120년간 걸으며 아버지 앞에 소망의 한날을 돌려드리기 위하여 효성을 다하였습니다. 그러한 날들이 오늘날 다시 나타나게 된다면, 저희들은 틀림없이 역사시대에 하늘을 배반했던 노아의 친척권내에 있는 무리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요, 노아를 환영하지 못했던 자녀와 같은 입장에 서지 않을 수 없음을 저희들은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 하던 입장은 아버님의 심정과 인간의 심정이 맺어져야 할 엄청나고도 역사적인 정상이었습니다. 그런 엄청난 자리에서 아브라함의 생명과 이삭의 생명을 하늘과 땅의 생명을 대신하여 묶으려 하는 찰나에 저희들과 같은 제삼자가 있었다면, 틀림없이 그것을 환영하면서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호소하는 자신들이 되지 못하였을 것임을 이 시간 느끼게 되옵니다.

모세 시대를 놓고 볼 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모세의 아내인 십보라가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가지고 이렇게 해야만 죽음의 고빗길에 선 모세를 살릴 수 있다고 외칠 때 어는 누가 그것을 믿고, 어느 누가 그것을 환영했사옵니까?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의 정탐꾼 가운데 10명이 불신의 보고를 했지만, 그래도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아버님이 엄연히 살아 계심을 강조하고, 그분을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외치며 외로운 자리에 있던 모세의 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스라엘의 책임자로서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다는 것을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 이스라엘 60만 대군이 광야에서 다 쓰러지는 입장에 놓였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은 사망의 권을 뚫고 올라와 생명의 인연을 수습하고 새로운 이스라엘 창건에 주도적인 역군들이 되었던 것을 아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말하기를 좋아하고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이었는데 협조하는 입장에서 참견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하는 입장에서 번번히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무리였던 것을 아옵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오늘의 저희 자신들도 역사과정에 있어서 하늘을 배반할 수 있는 일단의 무리였사오나 아버지께서 수고하신 공로의 인연을 터로 하여 아니 따라갈래야 아니 따라갈 수 없고, 아니 믿을래야 아니 믿을 수 없는 환경으로 몰아내셨음을 아옵니다. 더우기 저희 개개인 자체는 그러한 자리에 설 수 없는 인간들임에도 불구하고, 역사과정에서 왔다 간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하늘땅을 위하여 탕감의 제물로서 대가를 치른 그 공적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저희를 붙들어 주신 역사적인 인연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저희들이 통일의 무리로서 남아진 데 대하여 무한한 감사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3년 이상 10년, 20년 노정을 걸어나온 식구들을 중심삼고 볼 때, 스스로 하늘을 대신하여 하늘을 위해 충성하는 자신이 되지 못하고 뜻을 의심하고, 하늘을 배반하고, 하늘을 헐뜯고, 하늘을 불신하며, 하늘을 원망하는 자신들이 되었던 사실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렇듯 면목을 세울수 없는 자신이요, 얼굴을 들고 거룩하신 성상을 대할 수 없는 자신임을 스스로 발견해야만 되겠습니다.

고귀하시고 천지의 대주재 되시는 절대자이신 당신을 저희가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아무런 자격도 갖추지 못한 자신들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저희가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당신께서 자식을 위하여 희생한 대가요, 억천만세 외로이 자식을 찾아 나오신 당신의 노고의 대가로 말미암은 것을 알게 될 때, 당신의 은사 앞에 저희들은 천만번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하늘 앞에 이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것은 물론이요, 뼛골이 녹아 나더라도 충효의 절개를 남기고 죽겠다고 하늘땅을 대해서 맹세하는 것은 물론이요, 온 세계 만민을 대신하여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여 맹세하고 나설 수 있는 아들딸의 모습이 되고, 아버지의 마음에 맞는 아들딸이 되어야 될 것을 생각하면서, 그러한 아들딸이 되기 위하여 이 시간,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엎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 암흑이 깃든 이 땅위에 광명한 천국의 길을 개방시키기 위하여, 효자와 충신의 도리를 갖고 외로운 자리에서 탄생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2천년전 유다지파에서부터 곡절이 엇갈리는 비운의 역사를 통하여 태어나신 것을 아옵니다.

마리아 시대까지 나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수난의 고빗길이 있었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아버님, 예수 그리스도가 마음 속에 느끼는 바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될 때, 예수 그리스도는 부모가 있어도 진정한 부모가 아니었고, 형제가 있어도 진정한 형제가 아니었고, 친척이 있어도 진정한 친척이 아니었습니다. 교회가 있어도 자기가 필요한 교회가 아니었고, 나라가 있어도 자기가 필요한 나라가 아니었고, 세계가 있어도 자기가 필요한 세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참으로 외로왔던 분이었습니다. 그러한 모든 것을 참아 나오신 예수님을 이 시간 저희들은 높이 찬양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불쌍하신 예수님을 붙안고 형제지정을 가지고 역사를 대신하고, 시대를 대신하고, 미래를 대신하여 통곡할 수 있는 마음을 갖지 않고는 체면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친척들이 있었지만 예수님의 그 불쌍한 모습을 대신하여 친척의 사명을 한 사람이 없었던 것을 생각하고, 자기 일신이 희생되는 한이 있더라도 예수님을 위하여 목을 놓고 탄식하고, 이스라엘이 책임 못한 죄를 탄식하고, 문중의 장래가 이즈러진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통곡했던 친척들이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여기 모인 저희들은 예수님의 친척을 대신하여 예수님의 편이 될 수 있는 모습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교회의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유대 교단과 수많은 제사장들은 스스로 하늘을 받들고 하늘의 내정적 인연을 생활에 나타내어 하늘의 규범을 세운다고 하면서 나가던 무리였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중심이요, 생명의 결정체요, 사랑의 중심이요, 사랑의 결정체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그렇게도 냉정하게 모른체했사옵고, 이스라엘 나라의 정신적인 책임을 진 유대 교단 중에 예수님의 편이 되었던 자가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원통한 아버지의 4천년 수난의 결과였다는 것을 생각할 때, 저희들은 눈물로써 아버지를 대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그때 그러한 예수님 앞에 아버님의 뜻을 알고 찾아온 사람은 밤길을 더듬어 찾아온 니고데모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또, 십자가를 등에 지고 갈보리 산상을 향하여 걸어가는 예수님을 도왔던 사람은 강제로 끌려나온 아리마대 사람인 요셉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저물어 가는 석양길에서 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처량한 인간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종말이 이렇게도 억울하고 비참하였던 사실을 회상하게 될 때, 저희들은 원한에 사무친 마음으로 과거의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를 저주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저주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수고하여 쌓아 놓으신 이스라엘권이 무너질까봐 혀를 깨물고 죽음길을 가면서까지도 그들의 복을 빌어 주어야 했으니, 그런 예수님의 원통한 심정을 저희들은 기필코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마지막 길을 떠나는 한많은 예수 그리스도의 편에 서서 생명을 걸고 울부짖으며 슬픔과 원한의 역사를 가로막고 나선 형제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어머니마저도 예수님의 죽음길을 `내가 대신 가겠다'고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진정 불쌍하신 예수님이었습니다.

죽음의 길에서도 동정을 받지 못한 예수님은 고독한 고아의 신세요, 인생노정에 있어서 낙오자의 신세였다는 것을 저희들이 이 시간절절이 느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친구가 되어야 하고, 이러한 예수님의 친척이 되어야 하고, 이러한 예수님의 교단이 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이러한 예수님의 누나, 혹은 동생이 되어야 할 입장에 선 무리가 바로 이 역사시대에 홀로 남아진 통일교단이요, 저희들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예수님은 만민을 구원해야 하는 메시아의 사명을 가지고 탄생하신 분이라고 입에서 입으로 말을 놓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을 알고 보면 이토록 예수님은 역사적 슬픔 가운데 고독하게 태어나신 분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 시간 저희들은 통곡을 하고, 그런 예수님의 슬펐던 내심의 정경을 통곡하며 위로할 수 있는 모습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는 뜻을 알고 난 그날부터 예수님의 슬픈 한을 풀어 드려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아버님의 슬픈 한을 풀어 드려야 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날까지 싸워 나와 오늘 이 통일교단을 형성하였사옵니다. 이와 같이 슬펐던 아버지의 사연을 드러내어 가르쳐 줄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인연과 터전이 이 지구성에 역사 이래 처음 나타났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곳은 그야말로 아버님의 소망을 대신할 수 있는 한 곳이라는 것을 저희들이 잊어서는 안 되겠사옵고, 아버지의 심정이 여기에서 다시 묶어지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목을 안고 눈물 흘릴 수 없는 자리에서 죽어 갔습니다. 또한 아버지의 손끝을 붙들고 사정할 수 없는 자리에서 죽어 갔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희들에게만은 아버지의 목을 안고 눈물을 흘리는 슬픈일이 있어서는 아니 되겠고, 아버지의 손끝을 붙들고 사정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하며 올렸던 기도는 예수님 자신이 올려서는 안 될 기도였다는 것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기도는 예수님의 천척과 형제들이 올려야 했고, 예수님의 신부가 올려야 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십자가도 예수님이 질 것이 아니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져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갈보리 산상에서 원수의 창에 찔려 피를 흘리며 갔던 최후의 운명길도 예수님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아니라 예수님의 형제가 가야 했고,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가야 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시대권내에서 예수님을 동정한 사람은 천지간에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저희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그러한 슬픔의 권이 이 시대에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방비하기 위하여 모여진 무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땅 위에 통일의 기치를 들고 통일의 말씀과 통일의 노정이 나타난지 수십 년, 그 동안 아버님께서는 기쁨의 날이 아니라 슬픔의 날을 지내오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보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준 한을 풀기 위해서 소망의 한때, 6천년 역사의 종말의 한때를 세우시려는 아버지의 뜻은 오늘날 한국 강토에서 슬픔의 날을 맞이하였습니다.

수많은 종교들이 있음은 오시는 주님의 뜻을 받들어 그를 모시고 그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히려 주님을 죽음의 길로 내몰기 일쑤였습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의 한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그러한 아버지의 심정을 위로하면서 아들을 대신하여 아버지를 염려하는 마음을 세워 놓지 않으면 안 될 사연을 붙들고, 저희 통일교단을 남아 있게 하여 주신 당신의 은사 앞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옵니다.

저희는 통일교단이라는 이름을 갖추지 못하고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을 연장시키며 수난의 노정을 벗어나지 못한 채 20여 성상을 지내고 또 지냈나이다. 죽음길 가운데서도 생명줄을 이어 놓고, 몰리는 자리에 서서도 생명줄을 이어 놓고, 고아의 자리에서도 생명줄을 이어 나오면서 이 민족의 심정을 대신하기 위하여 온갖 죽음길과 희생의 길을 거쳐왔습니다.

아버님, 제사장의 직분과 제물의 직분을 겸하여 세계적인 사명을 짊어진 통일교단인 것을 이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이곳에 모인 통일의 무리들은 이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오늘날 찬양해야 할 일이 있을진대 먼저 아버지의 수고를 찬양해야 되겠고, 역사시대에 선지선열들이 피 흘린 대가를 찬양해야 되겠고, 지금까지 수난의 역로를 거쳐 나왔지만 아직도 갈 길을 다 못갔다고 몸부림치며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면서 충효의 도리를 다하겠다고 정성을 다하는 통일의 무리들을 찬양해야 되겠습니다.

저희 통일교단은 이와 같은 하나의 전통을 세워 이 땅위의 모든 인류에게 진실로 진실로 하나님을 똑바로 가르쳐 주어야 되겠습니다. 가르쳐 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보여 주어야 되겠습니다. 얼마나 서러우신 아버님이신가를 보여 주어야 되겠습니다. 얼마나 억울했던 예수님이신가를 보여 주어야 되겠습니다. 얼마나 불쌍했던 이스라엘 민족인가를 보여 주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모든 한을 다 풀어 드리고 아버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통일교단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불쌍한 무리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불쌍하신 아버지와 더불어 생활하며 효성의 도리를 다하는 무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중심삼고 형제지정을 맺지 못하였던 한의 이스라엘권을 오늘 저희들이 우애의 정으로써 복귀하여 아버지의 사랑을 몽땅 받을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일족을 지극한 정성으로 모시고 위할 수 있는 무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 시간 스스로 자각하고, 몸과 마음이 하나된 가운데 아버지 앞에 새로운 결의를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이 역사적인 기쁜 날을 맞아 과거의 슬펐던 전체의 생애를 승리로서 거둘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전체 기독교 역사를 승리의 결과로 거두었다고 할 수 있고, 통일교회의 역사는 슬펐던 역사였지만 오늘 이 한날을 맞이함으로써 기쁨의 역사로 종결을 보았다고 할 수 있는 거룩한 날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1971년도는 당신께서 허락하신 역사적인 새로운 출발의 해입니다. 7년 대환난의 한계선을 넘어서는 해요, 예수님이 넘지 못했던 7년노정을 넘어서서 8년 수로 접어들어 가는 첫출발의 해입니다. 이제부터 기독교의 슬픈 역사는 해방과 더불어 햇빛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버님, 세계 만민이 환희에 찬 모습으로 하늘을 찬양할 수 있는 희망의 1970년대가 되고, 새로운 기쁨의 오늘 3일의 역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땅 위에 왔다 간 기독교의 순교 열사들이 사정이 다른 죽음길을 갔지만, 기독교를 믿고 나오면서 제사장의 책임을 다하느라고 고생하였던 역사시대의 교직자들이 비록 뜻과 일치된 길을 가지는 못하였지만, 이날을 기하여 이들의 행적을 뜻과 일치된 가치로서 인정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지금까지 기독교 교단이 뜻 앞에 어긋난 자리에 있었다 할지라도 오늘 이 아들의 기도를 통하여 일치된 자리에 설 수 있는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후 12사도를 중심삼고 로마 박해시대를 거치고, 수많은 국경을 넘으며 복음을 전파할 적마다 죽음의 교량을 연이어 나온 피의 대가를 긍휼히 보시어서 이들을 용서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빌고 원하옵나이다.

예수님도 환희의 표정을 지으시고 아버지께서 기쁜 날이라고 공인하는 자리에 서서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과 사도들을 규합하여 하늘 잔치를 베푸는 이 날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땅 위에 있는 통일교단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여기에 서 있는 자식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그 수난의 역사를 걷어치워야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슬픈 일이 있을 때는 저희들이 수난의 길에 서서 그 슬픔을 탕감하였사옵고, 죽음길이 있을 때는 하늘의 혈족을 통하여 탕감하는 놀음을 했었으나 이제는 그런 시대가 지나갔습니다. 이제 통일교인들 앞에 있어서는 수난의 길이 탕감의 시대로 남아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하는 무리가 있다면 그들을 통해 탕감하는 시대로 넘어가는 줄로 알고 있사옵니다. 이 날을 기하여 저희 통일교인들이 슬픔의 조건들을 탕감하는 시대가 넘어가게 하시옵소서.

오늘을 그럴 수 있는 거룩한 날로 아버지 앞에 봉헌하였사옵니다. 이날을 높이 찬양하면서, 하나의 한계점을 바라보고 생애를 바쳐 지금까지 투쟁해 나온 아들딸의 한을 풀 수 있고 전인류가 천국을 개문할 수 있는 한 시점이 육계와 영계가 합동 귀일한 일치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오늘 새벽에 통고하였사옵니다. 이 말씀과 더불어 세상에 널려 있는 수많은 도인들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예고할 줄 알고 있사오니, 이 시간부터 그들 스스로 거느리고 있는 수많은 무리들을 모아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경배드려야 되겠습니다.

그와 같은 인연을 연결시키기 위하여 오늘 기성교회를 대표한 한 아들이 이 통일교단을 방문할 수 있게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 것을 아옵니다.

하늘의 일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언제부터인가 아버지께서 저희들이 모르는 가운데 준비하셨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에, 아버님은 정말 불쌍하신 분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오늘 이 시간 상처와 허물을 가진 서자의 입장에서 자녀의 입장을 상속받고 나선 불쌍한 무리들이 아버지 앞에 경배드리오니 받아 주시옵고 품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아버지께서 남겨 놓으신 대업을 완수하여, 이 지구성이 당신의 품에 안기게 되는 날까지 생명을 다하고 사랑을 다 바쳐 나아갈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하옵니다. 과거는 탕감의 서러움과 더불어 갔지만 이제는 환희와 승리의 영광을 찬양하면서 아버지 앞에 나아가야만 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기독교인들이 그늘 속에서 살아 나왔사옵니다. 저 역시도 그러한 그늘 속에서 살아 나왔사옵고 통일교단도 그러하였사옵니다. 그러나 이제 광명한 햇빛을 정면으로 받으며 화기애애한 기쁜 모습으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충천되는 승리의 영광과 더불어 아버지의 아들딸 된 무한한 가치를 찬양하면서, 마음 놓고 효성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시대를 맞게 하여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옵니다.

아버지, 부족한 저희들이 정성을 모아 오늘 이날을 기쁜 날로서 아버지 앞에 고이 묶어 드리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통일교단으로 말미암아 뜻 앞에 원통한 자리에 선 사람도 많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잔칫날에는 지나가는 행인도 거기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이요, 지나가는 걸인도 그늘 아래서 잔칫상을 받게 되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니, 그럴 수 있는 혜택을 남한의 삼천만 민족과 북한의 천오백만 민족들에게까지도 베풀어 주시옵소서. 공산권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요, 지옥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에게까지도 아버지의 특권을 부여하시는 특사의 한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의 모든 전체를 허락하신 뜻과 더불어 갖추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