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집: 수난의 정상에서 1971년 05월 05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61 Search Speeches

하나님의 나라를 찾을 때까지 수난 받을 것을 각오하라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지금까지 우리의 신앙생활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배치되고 상치(相馳)되었던고 ! 하나님을 빙자하여 자신들이 복을 받고자 하고,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지는 못할망정 하나님께 슬픔을 가해 드리는 입장에서 자신들의 슬픔을 피하려 했던 것을 생각할 때, 과거의 개인적인 불효라면 모르겠지만, 가정적으로도 불효하는 입장에 서게 되면 하나님은 어떻게 복귀의 소원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가정적인 불효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가정이 안착할 수 없습니다. 가정이 종족을 움직여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종족의 십자가를 짊어져야 합니다. 하나의 문중이 있으면 그 문중의 모든 수고를 우리들이 책임지겠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문중이 강제로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히 굴복하여 우리가 가는 길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문중을 움직여 내기까지는 얼마나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 마을 사람들같이 적당히, 선한 일이나 하고 죄짓지 않고 그들에게 비판받지 않을 정도의 생활을 하겠다고 한다면 몇십 년, 몇백 년이 걸려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밤이나 낮이나 쉴 새 없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고 나서도 자랑하기보다는 앞으로 더 할 것이 남아 있기에 자랑하기를 원치 않는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종족복귀의 한을 짊어지고 종족과의 사이에 있는 모든 담을 헐어 버림으로써 하나님이 마음 놓고 우리의 종족이요, 아들딸이라고 할 수 있는 동기와 기원을 마련해 놓아야만 하나님의 구속을 받을 수 있는 종족이 될것이 아니냐? 누구로 말미암아서? 그 부부로 말미암아서. 이러한 종족이 이루어졌다면 그것으로 끝났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하나님도 그것을 얼마나 바라시겠느냐는 것입니다. 그 종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사탄세상을 전부 다 불심판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시겠습니까?

그러나 종족만으로는 나라를 대할 수 없습니다. 최소한 하늘나라를 표방해야 합니다. 인간들이 합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한을 품고 나오더라도 나라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못 찾으면 다 도로아미타불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갈 길을 모색할 때, 물론 상대자도 요구했지만, 상대의 요구함과 더불어 국가와 유대교를 어떻게 해결지을 것이냐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일시에 하려고 4천년이라는 기간을 거쳐 나라를 준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일시에 무너지고 나라가 반대하고, 교회가 반대하고, 가정이 반대하여 외로운 입장에 섰을때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예수님은 그런 것을 느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예수님을 배척하고 돌아설 때에 얼마나 슬프셨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래도 소망의 터전으로, 믿을 수 있다고 해서 보냈던 것인데 그 무리들이, 하늘편에 서서 도와야 할 입장에 있는 무리들이 반대했으니 그때에 예수가 느낀 슬픔은 하나님이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느낀 슬픔 이상의 것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반대하는 무리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잃어버린 아들딸을 다시 찾기 위해 반대하는 민족과 원수를 찾아가야 할 입장에서 눈물을 흘리시고 수고하신 것을 생각하며 그 자신이 그들을 저주할래야 저주할 수 없는 입장인 것을 알고, 오히려 복을 빌지 않으면 안 되는 아버지의 심정을 체득할 수 있는 자리에 섰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가정이 정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