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집: 우리가 가야 할 길 1971년 05월 06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83 Search Speeches

하나님을 위주 해야 망하지 않고 오래 남"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오늘날 이 세계를 바라보게 될 때에, 오랜 역사적 문화라든가 전통을 지니고 있는 국가가 어디에 있느냐? 이것을 생각해볼 때, 어떤 민족이면 민족을 중심삼고 어떠한 제왕이 제창한 주의나 사상보다도 하나님을 위주한 종교 기반을 중심삼아 가지고 따라 나온 문화권이 오랜 역사적 과정을 지나오면서도 망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종교가 바라는 목적은 무엇이냐? 선한 나라가 오기 전에 선한 가정을 요구하는 것이요, 선한 가정이 오기 전에 선한 개인을 요구하는 것이 종교가 추구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선한 사람이 되어 가지고 무엇을 할것이냐? 선한 사람만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선한 사람이 되어 가지고 선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선한 생활을 하는 데는 어떠한 선한 생활을 해야 되느냐? 인간들끼리 맺어진 사랑을 중심삼고 선한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사랑을 중심삼고 선한 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요전에도 이야기했지만, 행복한 사람이란 남자면 남자 혼자서 완성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남성이 있으면 여성이 있어 가지고 둘이 완성한 자리에서 하나되는 인연을 맺어야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되는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그것도 타락의 인연을 통하여서 이루어지는 사랑을 중심삼고가 아니라 타락의 인연을 벗어난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고 남자와 여자가 화합하여 가지고 생활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 생활하는 자리는 일시적으로 하나된 자리가 아니라 영원히 하나된 자리여야 됩니다. 일시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면 일시적인 하나를 이루지만, 영원한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면 영원히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 이후 인간들이 가진 사랑은 어떤 사랑이냐? '인심은 조석변 (人心朝夕變)이요, 산천은 고금동(山川古今同)이라'는 말도 있지만 우리 인간의 마음은 매일같이 변합니다. 여러분 개체의 생활노정을 두고 보면 오늘은 이랬다 내일은 저랬다 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뭐냐 하면 변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랬다저랬다하는 생활 가운데에서 사랑을 찾는 데 있어서 사랑의 중심을 어디에 둘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남에게는 둘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이랬다 저랬다하는 사람은 그 목적을 어디에다 둘 것이냐? 다른 데에다 둘 수 없는 것입니다. 이랬다저랬다하는 관계이니만큼 제삼자에게 그 목적을 둘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자신에게 두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타락한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은 이랬다저랬다하는 사람이요, 변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목적관을 두는 데도 상대에게 둘 수 없는 입장입니다. 왜? 서로가 다 변하기 때문에, 오늘 거기에 두었다가는 내일 또 변하기 때문입니다. 즉. 희망을 가졌다가는 절망에 부딪치게 되는 것이요, 소원을 가졌다가는 타격을 받기 때문입니다. 항시 변하는 인생의 군상(群像) 가운데의 그 누구에게 목적을 두었다가는 그 목적이 크면 클수록 큰 타격을 받기 일쑤이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권내에서는 목적을 두었댔자…. 그러므로 결국은 자기에게밖에 둘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들의 운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이 아무리 소망과 희망을 가졌다 하더라도 결국은 자기를 초월할 수 없는 결과에 부딪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존재가 오늘날 타락권내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인 것입니다.

만일 인간이 타락하지 않고 일치된 방향을 가졌다면, 항시 변하지 않는 하나의 방향을 가졌다면, 아침에도 그 방향이요, 낮에도 그 방향이요, 저녁에도 그 방향이요, 일년 후에도 그 방향이요, 십년, 일생을 지내도 그방향이요, 혹은 천년 만년 영원히 계속 사는 그런 인간이 된다 하더라도 그 방향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로 말미암아 그런 방향이 시작될 수 있느냐? 그것은 인간을 중심삼고서는 시작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런 인간 외에 어떤 절대자가 있으면 그 절대자를 중심삼아 가지고 시작돼야 합니다. 그래서, 변치 않는 방향이 이 지상에 현현하지 않으면 변하기 쉽고 방향을 가리지 못하는 인간은 망할 수밖에 없겠기 때문에, 사랑의 하나님께서 변하지 않는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지구성, 인류역사의 배경을 더듬어 오셨다는 사실, 이 시대적 환경을 찾아오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 방향이 변하지 않는 하나님을 위주한 뜻과 사상이 출발되어 가지고 그것이 역사와 더불어 길이길이 같은 방향을 취하면서 망하지 않고 역사를 수습해 나가는 그런 무엇이 없다 할진대는, 인류 세계에서 희망이니 목적이니 혹은 평화니 행복이니 하는 것은 찾올 수 없을 것이 아니냐.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지금까지 종교 문화권이 세계의 역사를 형성해 나왔다는 것은 두말할 바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지금 세계에는 4대 종교 문화권이 남아 있습니다. 기독교, 불교, 힌두교, 회회교 문화권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한 자리에서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4대 종교 문화권은 동에서, 혹은 서에서, 남에서, 북에서 출발했습니다. 각각 다른 자리에서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한 자리에서 출발했으면 한 곳에 결과될 것입니다. 그런데 동서남북 사방에서 출발해 가지고 하나의 목적을 향해서 나가지 않고 그 목적이 서로 다르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목적이 네 개가 되어 가지고는 네 개의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그것은 이랬다저랬다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결과의 자리에는 설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종교가 출발한 자리는 다르지만 귀결되어야 할 결착점은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 그것이 어디에서 같아져야 되느냐? 이런 입장에서는 아무리 연장해도 같아지지 않습니다. 다른 방향을 가지고는 같아지지 않습니다. (판서하시며 설명하심) 이러한 자리에서…. 요것이 목적점입니다. 여기에서만 일치됩니다. 지금 이 세계를 보게 되면 세계는 이렇게 쭉 둘러 있습니다. 이 목적점이 일점에 가서 귀결되어야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종교를 보면, 어떠한 종교든지 출발을 왜 했으며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간다 하는 선을 그어 놓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해서 타락을 했으며, 그 타락한 인간이 어떻게 되찾아 가야 된다는 선을 그어 놓고 그 공식 법도에 따라 가지고 나오는 종교가 없었습니다.

막연하지만 세계를 향하여 인류는 박애사상권내에 들어가야 된다고 가르치는 거예요. 인류는 박애사상을 가지고 형제의 우애를 가져야 된다고 가르치는 거예요, 막연하게나마. 또한 온 인류는 평등해야 된다. 남자나 여자나 모두가 평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을 전부 종합해 보면 무엇이 되느냐? 인류를 중심삼고 볼 때, 인류는 무엇이냐? 아담 해와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아담 해와가 인류의 부모라면 인류는 아들딸이라는 것입니다. 그거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