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집: 제물의 완성 1971년 09월 0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65 Search Speeches

"누가 최고의 효자, 충신, 애국자, 성인이겠"가"

효자가 있다면, 효자 중의 진짜 효자는 어떤 사람이냐? 부모를 위해 일생 전부를 희생하고 7,80세 고령이 되도록 효성을 다한 사람과, 젊은 청춘으로서 부모를 위해서 생명을 바친 효자가 있다고 할 때, 누가 더 효자라고 할 수 있느냐? 아무리 7,80이 되도록 효자의 노릇을 했다 하더라도 청춘 시대에 부모를 위해 생명을 바친 효자에게는 못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충신은 죽은 후에, 생명을 바친 후에 결정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효자도 생명이 엇바뀌는 자리에서 결정되는 것을 우리는 역사시대에서 많이 보아 알고 있습니다.

참을 찾는 데 있어서도 남과 같이 좋은 환경에서, 다 갖추어진 자리에서 찾는 사람하고, 갖추어지지 못한 자리에서 생명을 회생해 가면서 찾는 사람하고 어떤 사람이 보다 더 가치가 있을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건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환경이 전부 다 갖추어진 터전 위에서 수고도 않고 찾을 수 있는 참이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귀하겠느냐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은 경계해야 할 사람입니다. 참은 평탄한 환경에서 엮어져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평탄한 환경에서 엮어져 가지고 남아지는 참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참이 참으로서 전승되어 가지고 역사과정을 거쳐 현재의 입장에 남아지기 위해서는 모진 투쟁 행각의 노정을 거쳤을 것이 비운의 역경을 극복해 나왔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참은 그런 자리에서 찾아진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런 참을 상속받고, 그런 참을 사수하기 위하여 자유스럽고, 소망스러울 수 있는 기쁨의 자리에서 참을 찾는 사람이 있다고 할진대, 그 사람이 참을 대할 수 있는 진짜 자격자이냐 하면, 나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참이 엮어 나온 역사적 슬픔보다도 더 처참하였고, 더 수난길을 극복하였고, 더 어려움에 부딪쳤고, 혹은 딱한 사정의 노예가 되어 가지고 참을 찾기에 많은 애를 썼고, 뿐만 아니라 최후에는 자기의 생명까지도 잃을 수 있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닌 그런 자리에서도 참을 찾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참을 대할 수 있는 진짜 자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역사과정에 있어서 참을 대해 가지고 수고한 사람 가운데 제일 고생을 많이 하면서 참의 가치를 추구한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사람이 참을 이어받을 수 있는 주인이 될 것입니다. 참을 위해서 수고하고, 참을 위해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참을 위해서 피를 흘릴 수 있는 자리에 선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관리를 받고, 그 사람의 소유가 되고 싶은 것이 참으로서의 바람이 아니겠느냐?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대한민국에 애국자가 많다 하더라도 그 애국자 가운데 누가 제일 가는 애국자냐 하면 국가가 일시에 난시에 처했을 때 그 난시를 모면하기 위해서, 그 환경을 염려하면서 충성하는 것보다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중심삼아 가지고 폭넓은 입장에서 생각하면서 수난의 길을 가고, 또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없으면 자기의 생명을 바쳐서라도 그 길을 열어 놓겠다고 하며 희생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또, 그렇게 희생한 사람 가운데 세 사람이 같은 마음을 먹고 같은 경력을 가졌으나, 두 사람은 쉽게 죽었고 다른 한 사람은 원수들에게 붙들려 가지고 손이 찢기고 눈이 빠지고, 귀가 잘리고 코가 잘리고, 다리가 부러지는 등 하나하나가 잘려서 비참하게 죽어갔다면, 그 세 사람 가운데 누가 제일의 애국자 반열에 동참할 수 있겠느냐?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제일 비참하게 희생된 사람입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한 국가에서 그렇다면 세계의 성인 가운데서는 어떠한 성인이 최고의 반열을 차지할 것이냐? 마찬가지로 희생하되 제일 비참하게 죽은 사람입니다. 그 외에는 최고의 자리를 차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실정이라든가 생활 환경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사건건에 있어서도 보다 희생하는 사람, 보다 뜻을 대하여 정성을 들이는 사람이 주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어떠할 것이냐? 우리 인간지사(人間之事)가 그러하고, 역사적인 사정이 그러하다 해도 하나님은 다를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느냐?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불쌍한 사람이 누구냐? 비참한 자리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비참하게 살다가 생명을 잃은 사람이 불쌍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때, 이 세계의 참된 주인이 있다면 그 주인은 어떤 사람이 될 것이냐? 남의 눈치나 살살 보고, 때에 따라 자기에게 이익될 것이 있으면 살짝 옆으로 빠져 가지고 그것만 바라고 행동하는 사람, 자기에게 이익이 크면 큰 만큼 비례적으로 희생을 각오하는 사람은 일시적인 주인은 될는지 모르지만 역사적인 주인은 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