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집: 통일교회사(Ⅲ) -0001년 11월 30일, Page #186 Search Speeches

수난의 50년대와 성장의 60년대

어머님은 그 집단의 출신입니다. 서해안 지방에 김여인의 집단이 있었습니다. 김여인이 죽은 후에는 허여인이 계속했습니다. 어머니의 어머님은 허여인을 독실하게 따르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어머님이 어머니를 4살때 그 집단으로 데리고 갔는데 허여인이 어머니를 축복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에게로 사명이 승계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물론 그것을 몰랐습니다. 선생님이 1960년에 어머니를 만났을 때 선생님은 그러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준비되었던 모든 것들이 1960년에 하나로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참부모가 나타났습니다. 이것으로부터 자녀의 축복이 있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북한을 떠날 때는 1950년 겨울이었습니다. 선생님은 1951년에 남해안에 있는 부산까지 내려왔습니다. 그때부터 10년 동안 선생님은 선생님이 성공했던 1960년까지 심한 박해와 싸웠습니다. 1960년 이후에도 우리는 박해를 받아 왔지만 우리의 일은 차츰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복귀섭리는 가인과 아벨 사이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일에 있어서 항상 문씨가 가인편에서 나타납니다. 항상 선생님을 박해하는 사람은 문씨입니다. 또한 가정적인 레벨과 국가적인 레벨에서도 문씨가 반대했습니다. 우리가 정부에 등록을 하려고 했을 때 문교부가 등록을 취급하였는데 그때 문교부 장관이었던 문씨가 우리의 신청을 거부했습니다. 우리는 그것과 싸워야 했습니다. 일주일 후에 그것이 반복되었습니다. 그 일주일은 70년, 700년 또는 7,000년에 해당합니다.

그 당시에 그것이 번복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어떤 종교적인 운동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번복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1963년 5월 31일에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36가정과 72가정을 축복했습니다. 그때는 국가와 싸우던 때였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겪음으로써 우리는 현재의 위치까지 왔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이런 것들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책을 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