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집: 불쌍한 복귀의 역군들 1969년 06월 0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70 Search Speeches

백남주의 사명을 이어받은 이용도

그래서 서쪽은 허호빈에게 넘어가고 동쪽은 이용도 목사에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백남주는 아담형입니다. 완전히 둘로 갈라져 어느 한편에 서지 못했습니다. 신령한 역사편도 되고 진리편도 되고…, 이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확정적으로 결정짓지 못하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스웨덴보르그라든가 한국에서 신령한 역사를 하는 사람들은 전부 이 사람들의 일파입니다. 이 사람들이 책임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용도 목사가 나오는데, 그는 허호빈과는 파가 좀 다릅니다. 원래 그들은 합해야 됩니다. 그런데 한때는 합했다가 다시금 갈라졌습니다. 그리하여 이용도 목사는 무엇을 만들었느냐? 예수교회를 만들어서 나옵니다.

중앙 신학교 교장이었던 이호빈 목사나 박재봉 목사는 한국 기독교에 불을 붙인 사람들입니다. 1930년대에 이용도 목사는 한국에서 그야말로 엘리야적 불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이 사람이 강의를 하면 수많은 군중을 하늘의 역사에 잠기게 하는 등 하늘의 은혜를 물 붓듯이 퍼부어 주었습니다. 왜 물 붓듯한 은혜를 부어 주었느냐? 이스라엘과 유대교가 하나되어 로마를 반박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에 있어서도 기독교가 한국을 온전히 업고 넘어가서 반대하는 일본을 물리치고 하늘의 권위를 세워야 할 싸움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그에게 강력한 불을 주어 가지고 전 기독교가 하나 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전 기독교가 완전히 하나만 됐더라면 절대 신사참배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끝날에 가서는 일본이 강제로라도 굴복시키기 위하여 총칼을 들이대는 일이 반드시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를 무난히 넘기 위해서 기독교가 거국적으로 이런 불길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 되어야 했습니다. 전부 일치단결하여 일본을 반대하고 나섰으면 총칼을 들이대지 못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왜? 아담의 권한을 주장할 수 있는 자리에 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되었는냐? 이러한 특정한 사명을 짊어지고 왔던 사람들을 반대했습니다. 그 반대한 대표자가 누구냐 하면 김인서입니다. 여기 혹시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사람은 죽었습니다만 이 사람이 이용도 목사를 붓으로써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거국적인 선동을 했습니다. 하늘이 사자를 보내 전국의 기독교를 통일시키려고 했는데 이런 일을 한 것입니다. 물론 그 배후에 기독교의 간부들이 가담되어 있었지만 말입니다.

이용도 목사가 이 땅에 와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이용도 목사는 2대(二代)째입니다. 이 2대에서 승리냐, 실패냐 하는 문제를 결정지어야 할 중요한 입장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한 사명을 짊어진 이용도 목사를 한국 기독교인은 일제히 환영을 했습니다. 이용도 목사가 교회에 가서 부흥회를 하면 그 교회의 교인들이 전부다 은혜를 받았습니다. 자기네 교회목사는 우습게 보고 뒷전으로 돌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까 분해 가지고 이용도 목사에 대해 반기를 들고 반대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평양을 중심삼고 출발하여 새 예수교 운동을 했던 이용도 목사는 1933년에 죽었습니다. 그때 나이가 몇이었느냐 하면 33세였습니다. 예수님이 연령과 같습니다. 그가 33세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계에 선풍적인 바람을 일으켰던 사실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사실이 무엇이냐 하면, 신령한 사람들이 이 땅에 책임을 지고 왔다 가게 될 때에 그를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용도 목사는 혼자 외로이 원산에서 죽어 갔지만, 그가 운명하는 순간 하나님이 택한 사람들이 먼 거리를 초월하여 하늘 앞에 특별한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세상의 기독교인들은 좋다고 춤을 췄을지 모르지만 그가 죽은 후 3일 동안 흰옷을 입고 추도를 드린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