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9집: 하나님을 중심한 참사랑과 통일된 가족 1990년 11월 28일, 한국 국제연수원 Page #151 Search Speeches

투입하고 잊어버리" 데- 영생이 있어

나, 하나 물어 보자구요. 여러분들 결혼할 때 자기 상대가 자기보다 못나기를 바랐던 사람 있으면 손 들어 봐요. 축복받을 때 자기보다 못난 사람과 축복받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어디 있어요? 그런 사람은 종자를 받으려고 해도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자기보다 못난 사람을 상대로 찾겠다는 종자는 없다구요. 왜 그러냐? 종의 번식에 있어서 우수종을 모으기 위한 거예요. 천리의 법도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슴 세계에서는 뿔개질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서로 죽이고 하는 것이 잔인한 것 같지만 우수종을 남기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누구든지 자기 상대가 자기보다 잘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자기가 따라다니던 수놈이 다른 수놈과 뿔개질하며 싸우면 암놈들은 떡 구경하다가 한놈이 나가자빠져 죽게 될 때는 자기가 따라다니던 수놈을 버리고 이긴 녀석을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동물들도 자기보다 잘난 상대를 찾는다는 거예요. 사람은 어때요? 사람도 그렇지요? 그게 철칙입니다.

그다음에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 못나기를 바라는 사람 있으면 손 들어 봐요. 한 사람도 없어요. 그게 누구를 닮은 거예요? 동기를 닮았어요. 원인을 닮은 것입니다. 원인이 그랬기 때문에 나도 그렇다는 거예요. 그 말은 뭐냐?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의 상대가 자기보다 잘나기를 바라고, 하나님도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 잘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런 천리의 대원칙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신 것도 자기의 사랑의 상대를 위해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기의 사랑의 상대를 창조하는 데 있어서 백만큼의 힘을 가진 하나님이 백만큼만 투입하면 자기만한 상대밖에는 안 나온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무한한 능력과 힘을 갖고 계신 하나님은 투입하고 또 투입하고, 영원히 투입하고도 잊어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2백, 3백, 천, 무한히 투입하고도 투입한 것을 잊어버리고 또 투입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를 들어 파이프 가운데에 물건을 넣고 자꾸 밀어보라구요. 투입하고 투입하고 투입하고 잊어버리게 되면 그것이 나중에는 우주 전체에 이을 수 있고, 하나님이 가운데에 있게 돼 가지고 위하는 그 사랑권 내의 분위기에 포위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분이기 때문에 영원한 사랑을 가지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데 있어서 영생의 논리가 추구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영생이 있는 것입니다. 중간에서 멈추면 영생이 아니예요. 잊어버리고 또 투입하기 때문에 영생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지금까지 하나님이 구원섭리, 재창조역사를 하는 데 있어서…. 창조 당시의 창조물이라는 것은 의식이나 구성내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타락한 50억 인류는, 어휴! 여기 최서방도 왔구만. 욕심 많고 도깨비 같은 녀석, 그 배후 보따리가 얼마나 너저분한지 냄새가 나요. 그래 가지고도 `나 통일교회 교인이니까 축복받고 싶소' 이러고 있어요. 아니예요,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재창조의 과정을 거치기 위해서는 영(零)의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다, 영의 자리.

오늘날 타락한 세계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 사탄의 사랑, 사탄의 생명, 사탄의 혈통으로 더럽혀졌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원수, 간부의 피를 받았어요. 그것이 무(無)의 자리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당신들은 모릅니다. 지금까지 그것을 붙들고 싸워 가지고 세계적인 챔피언이 된 이 사람은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 믿는 사람들도 참선을 하게 될 때에 `마음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무의 경지에 들어가는 거예요, 무의 경지. 무의 경지인 저편에 가지 않고는 재창조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의식적 이편은 악마가 관장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무(無)로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무를 중심삼은 본연적 참사랑의 순환적 내용으로, 인간이 이루려던 본연상을 다시 재현해야 된다는 내용이 역사시대에 남아 있기 때문에 기독교와 같은 세계적 주류 종교에는 중생이니 부활이니 하는 논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중생,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간다는 것입니다. 그게 맞는 말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문총재가 말한 이 원칙을 중심삼고 볼 때 천지의 구조적인 모든 내용은 딱 이렇게 돼 있습니다. 여기에 엑스(X) 와이(Y)가 있으면 선(善)이 위에 있어야 할 텐데 악이 위에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악은 내려가야 되고 선이 이 자리에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영점시대가 와야 된다구요. 이때는 동서사방의 방향을 모르고,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는 혼란의 때예요. 무의 시대입니다. 바로 그때가 지금입니다.

자기집이라고 마음 놓고 갈 수 있어요? 여편네를 믿어요? 아들을 믿어요? 어머니 아버지를 믿어요? 나라를 믿어요? 주인을 믿어요? 교회를 믿어요? 하나님까지 다 잃어버렸는데 누구를 믿어요? 그러나 다 잃어버렸더라도 이 본연적 블루프린트를 제작한 주인만은 알아야 되는 거예요. 그 블루프린트만 갖고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재창조역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레버런 문 같은 양반이 그런 경지에 들어가 보니 문제가 컸었다는 거예요. 동서사방으로 길이 다 막혀 버렸어요. 이것을 타개해야 되기 때문에, 세상 인간들의 욕망은 우주 주관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내 신앙의 표어는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을 완성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자, 통일이 어려운 것입니다. 통일은 돈 가지고 안 됩니다. 지식 가지고 안 됩니다. 권력 가지고도 안 됩니다. 그러면 무엇을 갖고 하느냐? 「참사랑」 참사랑이 뭐냐 하면 하나님이 재창조하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자기 생명을 천 번 투입하고도 잊어버리고, 인류가 복귀되는 날까지 영원히 투입하고도 잊어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선 분이 천지를 창조한 무한한 참사랑의 주인인 하나님이었더라 하는 것을 자각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