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집: 참되신 아버지와 자녀 1960년 09월 1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34 Search Speeches

부모의 심정을 알아"리" 자녀

오늘날 우리들은 성경을 어떻게 보아야 되느냐? 심정적으로 봐야 됩니다. 우리가 은혜에 깊이 사무쳐 기도할 때, 하늘의 심정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분하고 애달픈 마음에 사무쳐, `아버지여! 사무친 한이 무엇입니까? 성경 역사를 엮어 내려오시는 당신의 한이 무엇입니까?'하며 통곡해야 됩니다.

한이 무엇이뇨? 아담 해와가 타락하게 될 때 기뻐하신 하나님인 줄 아십니까? 만약 그런 하나님이라면 멱살을 잡고 싸울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이야?'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한이 있습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은 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말 못할 곡절과 한의 내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허덕이시며 찾아나오신 하나님은 어떤 신세뇨? 슬픈 신세입니다. 이 땅 위에 어떤 거지도 하나님보다는 낫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좌에 앉아 천지 만물을 호령해서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된다면 왜 6천년 동안 죄악의 인류를 끌고 나오셨겠습니까? 제일 불쌍한 분입니다. 주인인데도 불구하고 주인 노릇을 못하셨습니다. 아버지이신데도 불구하고 아버지 노릇을 못하셨습니다. 이처럼 분한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지으신 것이로되 당신 마음대로 못하셨고, 당신의 아들딸이로되 아들딸이라 하지 못하셨습니다. 이 담을 무너뜨리기 위해 섭리해 나오신 것이 6천년 역사입니다.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은 6천년 동안 한을 품고 오셨습니다. 그 아버지가 아들딸 앞에 나타나실 때의 모습은 어떠하겠느뇨? 상처 입은 모습이요, 말할 수 없이 남루한 모습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모습으로 이 땅 위의 타락한 인간 앞에 몇 백번 몇 천만번 오셨다 가셨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몰랐습니다. 오늘 이 시간도 우리 자신들 앞에 그런 모습으로 그러한 심정을 갖고 찾아오셨으되, 우리는 꿈도 꿀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 있으니, 그 얼마나 억울하시겠느냐 말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어떠한 이상주의나 이상론이 아닙니다. 호화찬란한 환경을 이루어 거기에서 춤추며 살도록 하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말씀이어야 하느냐? 먼저 하나님의 곡절이 심정을 드러내어 `나를 위해 이렇게 수고하신 아버지!' 라고 부를 때, 아버지께서 `오냐, 내 아들아! 지금까지 역사노정에 수많은 사람이 왔다 갔으되, 아무도 나의 심정을 모르더니 너는 알아주는구나'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들을 찾으십니다.

호화로운 자리에서 수많은 대중으로부터 영광받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남루하고 불쌍하고 추한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애통스러운 사정이 이렇잖습니까?'할 때, 하나님께서는 `오냐! 네 말이 옳다. 아담으로부터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를 거쳐 지금까지 6천년 역사노정에서의 내 심정의 깊은 한의 곡절을 네가 아는구나'하십니다. 이런 아들을 하나님은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적인 분이십니다. 그러니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아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천당은 어떠한 사람이 가는 곳이냐?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아는 아들딸들이 가는 곳입니다. 여기서의 역사는 곡절의 역사를 말합니다. 이 곡절은 평안하거나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과 배치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땅 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저 믿고 천당가겠다고, 예수 믿고 복받겠다고 합니다. 천만 부당한 일입니다. 예수 믿고 복받겠다는 무리는 다 망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보십시오. 하나님 믿고 복받겠다고 하다가다 망했잖아요? 그게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