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6집: 뜻 앞에 선 통일교회의 어제와 오늘 1983년 04월 24일, 한국 본부교회 Page #229 Search Speeches

심정적 주류기반을 확립하기 위한 통일교회

섭리사를 대표하고…. 섭리사는 종교세계를 대표한 그 센터, 심정권, 오늘날 이 심정권이 정상적인 자리를 완전히 잡아 가지고 내적인 중심기반이 되어서 그 중심기반 밑에 외적인 모든 세계상을 소화 규합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심정의 핵이…. 그런 결론에 도달하는 거예요.

그럼 이 심정만 끌고 가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심정만 끌고 가면 하나님은 끌려갑니다. 심정이 자리잡고 앉은 그 세계는 통일된 세계 위에 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심정의 핵을 가지고 오게 될 때는 무슨 일이 가능하냐? 정신세계의 통일이 가능하고, 물질세계의 통일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심정적 주류기반이 확립되지 않는 한 절대 불가능하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이 길을 가는 겁니다.

그 심정권을 지니게 될 때는, 신이 있다면 그 신은 관념적인 신이 아니예요. 실증적인 신이예요. 미래적인 신이 아니예요. 현실적인 신이예요. 나와 무관한 신이 아니고 나의 주체로서의 신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생활권 내에서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영원히 지닐 수 있는 주체자로서의 신을 모실 수 있는 놀라운 경지에 도달합니다.

그러면 신의 뜻이 있다면 신의 뜻이 뭐냐? 인간이 타락한 이후에 인간의 마음세계에 그 본연의 하나님의 내정적인 사랑의 주류기반을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그 주류기반이 연결되면 하나님과 인간이 둘이 아니라 하나되는 겁니다. 천지의 통일권이 벌어진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천지의 통일권은 하나님만 가지고는 안 된다구요. 상하로 연락하든가, 전후로 연락하든가, 좌우로 연락할 수 있는 사랑의 핵이 성립되는 섭리로만 그것이 가능하다 이거예요.

참사람을 우리가 왜 원하느냐 하면, 참돈을 갖기 위한 것이 아니예요. 참권력과 참지식을 갖기 위한 것이 아니예요. 그래서 종교는 '지식도 쓸데없다. 권력도 버려라. 돈도 버려라' 하는 것이예요. 세상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거예요.

그 부정하는 데는 뭘 찾을 것이냐? 모든 것이 막연한 자리에서의 부정은 안 된다 이거예요. 부정할 수 있는 하나의 그 내용이 뭐냐 할 때, 그 내용을 오늘날 종교는 얘기해 주지 않고 있다는 거예요. 기독교나, 불교나, 모든 종교가 그렇다는 거예요. 도대체 그 내용이 뭐냐? 부정해 가지고 잃어버리기 위한 것이 아니예요. 부정하므로 더 빛나고 더 높은 가치를 지니기 위한 것인데, 그 내용이 뭐냐? 막연한 사랑? 막연한 자비? 막연한 의(義)? 유교에서는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인성지강(人性之綱)이라고 말하지만, 그 인의예지가 뭐예요? 무엇을 중심삼고 완성시키려는 거예요? 의식을 완성시키기 위한 거예요? 사랑을 완성시키기 위한 것이예요. 전부 다 결론이 그거예요.

이러한 근본 문제가 오늘날 이 역사노정 위에, 하나님편으로 보면 섭리노정 위에 어느 한때에 해결을 짓고 청산을 지어야 할 역사적 운명입니다. 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이 뭐냐? 그것은 하나님의 내정적 본질적인 사랑의 주체성 앞에 본질적 사랑의 대상권을 상실한 것입니다. 어느 한때에 이 타락한 세계에서 이 대상권 현현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뜻으로 보는 절대적 관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있는 한 메시아라는 사상을 가지고 메시아를 중심삼은 이상권이 있어야 됩니다.

'신랑이 온다. 신부가 온다' 하는 그 신랑 신부라는 말이 무슨 말이예요? 돈을 중심삼고 묶기 위한 방법이냐 이거예요. 지식을 가지고 논할 수 있는 자리냐 이거예요. 권력을 가지고, 너와 나와 상하 비례적으로 차이 되는 권세적 권한을 가지고 논하는 자리가 아니다 이거예요. 신랑 신부는 사랑 가지고 논하는 자리라구요. 그 사랑은 무슨 사랑? 본질적 사랑이예요. 하나님의 뜻으로 비춰 보면 주류적 센터는 개인 확장으로부터 세계 확장까지 언제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사상이 있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에 하나님은 계신 것이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