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0집: 하늘이 함께하는 애착심을 갖자 1960년 09월 0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13 Search Speeches

개인과 세계를 넘어서 하나님의 한을 해원해 "려야 할 통일교인

우리는 이제 여기에서 무엇을 찾아야 될 것이뇨? 말씀과 더불어 말씀 통과 후에는 실체 통과시대가 온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기독교가 지금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고 연구하는 목적은 실체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서입니다. 실체의 기준을 통과 하지 않으면, 그 실체를 붙들고 이 땅 위에서 사정을 알지 못한다면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의 인류는 주님을 맞이해야 됩니다. 말씀을 완전히 통과 못 한 우리, 실체를 완전히 통과 못 한 우리, 심정을 완전히 통과 못 한 우리가 가만히 보면 제일 좋은 것만 바라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오, 신랑이신 주님! 사랑이신 주님! 사랑 자리까지 나가기 위해서는 말씀을 해결해야 됩니다. 말씀을 내재했으면 말씀과 하나될 수 있는 예수를 대신한 인격자가 돼야 합니다. 이걸 다 무시해 버리고 믿으면 천당 가고 신부가 돼요? 가나 안 가나 보자구요. 우리는 성경을 연구합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어떤것이 문제냐? 성경을 보면 그저 뭐 전부 다 요한복음 3장 16절같이 누구든지 다 그래요? 천만에요.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슬픔이 있다면 제일 슬픈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에게 십자가 고통이 있다 할 때 제일 큰 고통이 무엇이고 억울함이 무엇이냐? 성경 다 안다고 청산 못 해요. 뿌리가 없어요, 뿌리가. 오늘날 성경을 찾아볼 때 뿌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큰일이라는 거예요. 방황하고 싸우고 이단 저단하는 왕자들이 돼 버리고 만 거예요. 그러나 암만 싸웠댔자….가지는 가지끼리 싸우고 앞사귀는 잎사귀끼리 싸워야 되겠느냐 말이예요. 가을이 되면 다 떨어져 나갑니다. 생명의 진액이라는 것은 뻗어 나가는 거예요. 돌아가는 것입니다. 어디를 통하여? 뿌리를 통하여. 여러분이 그것을 알려면…. 베드로사 십자가에 꺼꾸로 달려 죽으면서도 `주여!' 했듯이 죽으며서도 주와 심정적으로 통할 수 있는 뿌리의 내용을 들추어 나와 인연을 맺어야 돼요.

예수가 십자가 도상에서, 죽는 자리에 나가면서도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는 이 심정으로 흘러내리려던 그 사정이 무엇인가 알아야 됩니다. 그걸 모르면 죽은 거예요, 죽은 거. 성경의 미해결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다 주었는데 다 해결하지 못해 가지고 무얼 또 바래요. 끝날에 왔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그걸 똑똑히 알아야 돼요.

그러니 예수는 이 땅 위에 올 때 신부를 찾아 온 것입니다. 반대하는 이스라엘 민족 앞에 나서서 외친 목적은 예수 믿고 천당 가기 위한 개인의 목적이 아닙니다. 나를 믿고 이스라엘을 구하라는 것이 목적이예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똑똑히 알아야 돼요. 나를 믿고 이스라엘을 구하고 이스라엘을 믿고 세계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는 영계와 땅을 구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예수 믿고 나서 나만 천당 가는 게 아니예요. 천만부당한 말입니다. 어디에 그런 선의 목적이 있어요?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도 민족을 위하여 믿는 것이라야 됩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세계를 위하여 사랑하는 것이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그러한 신자를 그리워할 것입니다. 어떨 것 같아요?

여러분, 바꿔 생각해 보라구요. 대천주의 공업(公業)을 완성시켜야 할 책임을 바라보면서 수많은 민족을 동원하여 양심적인 사람을 연결시켜서 하나의 형태를 갖추어 선의 주권을 해방하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뜻이라 할진대 내 개인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개인을 위하기 위한 것은 깨져 나가요. 불에 빠진다 말이예요. 그건 깨져야 됩니다. 깨지지 않으면 하나님이 망해요. 자기의 일족을, 한 나라를 위한 종교는 깨져야 됩니다. 그거 안 깨뜨리면 하나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전세계 기독교는 혼란의 때에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깨뜨려야 돼요. 왜? 하나님의 목적과 자기들이 갖고 있는 위치와 가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통일의 이념을 우리들이 부르짖고 나오게 될 때, 우리가 믿는 것이 내가 믿고 천당 가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걸 끊어 놓아야 돼요. 만약에 내가 믿어 가지고 민족을 구하고 그 구한 민족이 천당 간다면 내가 천당 가지 지옥 가겠느냐 말이예요. 신앙의 방향성이 다 거꾸로 됐으니 곡절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우리 통일신도들은 `내가 믿는 것은 이 민족을 구하고, 내가 믿는 것은 이 인류와 세계를 구하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슬픔 가운데 있으니 하나님의 슬픔까지 해방하기 위한 것이다' 이거예요. 여러분들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무슨 전지전능한 하나님….' 하지만 그건 다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의 모든 본의를 알려면 요거 공부를 해야 되겠다구요. `아, 하나님은 슬펐구나….' 여러분의 슬픔은 어디서 나왔어요? 우리의 희노애락은 하늘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몰림받는 데 최고로 몰림받자는 거예요. 수많은 종교인들의 반대를 받되 거기에서 우리는 사라지는 무리가 돼서는 안 됩니다. 대중을 위하여 나가 외치게 될 때 거기에 타오르는 하나의 불길이 대중의 마음을 뒤집을 수 있는 내용을 가졌다면 산다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시대에 있어서는 천법 말씀의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말씀을 찾아야 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말씀시대가. 말씀을 찾아내어 신부가 되려면 주체와 대상의 모습을 통하여야 된다는 거예요. 신부가 되기를 원하는 자는 인격적인 기준에 있어서 예수가 거치던 모든 심정의 내용을 통한 생활적인 감정이 화할 수 있는 이런 인격자여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