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8집: 홍순애 대모 승화1주기 추모예배 말씀 1990년 11월 21일, 한국 파주원전 Page #317 Search Speeches

선생님의 입북과 '하나님의 부인'이라" 할머니 상봉

내가 이남에 있다가 평양에 간 것은…. 하나님의 뜻적으로 볼 때 여자 가운데 `내가 하나님의 부인이다' 하는 사람이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부인이다. 여호와의 부인이다' 할 수 있고, 오시는 주님에 대해서 `내가 주님의 어머니다' 할 수 있는 여자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 사람 이상의 자손을 거느려야 됩니다. 그럴 수 있는 여자가 나타나서 `내가 하나님의 부인이다 '하는 소문이 나야 된다구요.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외쳤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시는 주님 앞에 `내가 하나님의 부인이다' 할 수 있는 여자가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해와가 하나님의 부인 아니예요? 하나님의 부인이 돼서 예수와 같은 장자를 낳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걸 거꾸로 올라가야 되니까 장자를 세워 가지고 하나님의 부인을 찾아 올라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런 복잡한 사연들이 있는 것입니다.

해방된 그 해에 선생님이 이남에 있으면서 시온파, 신약적 에덴복귀파인 김백문 집단에 들어가 6개월 동안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신령한 사람들과 전국으로 다 통하는 곳이예요. 거기에서 어떤 할머니가 하나님의 부인이라고 한다 하면서 김백문 일파가 조롱을 하는 거예요. 뭐가 어떻고 어떻고…. 내가 그 말을 듣자마자 이북으로 간 것입니다.

그때가 해방 뒤였기 때문에 쌀 사기가 참 힘들었어요. 그래서 내가 동네 사람들로부터 주문을 받아서 연안에 쌀을 한 트럭 사 놓고 그걸 가지러 간다고 해 놓고 나온 길이었습니다. 그때 성진 어머니가 성진이를 데리고 있을 때인데, 집에 쌀이 한톨도 없었어요. 집안에 쌀 한톨도 없이 해 놓고 내일 모레 돌아오겠다고 한 사람이, 가던 도중에 하늘의 명령을 받고 이북으로 간 것입니다.

트럭 가지고 쌀 가지러 간다고 한 사람이 없어졌으니 동네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단련을 받았겠어요? 무슨 사내가 쌀 가지러 가서는 나타나지도 않고 소식도 없는 거예요. 얼마 뒤에 가만 들어 보니까 평양에 가 있다는 소문이 들려오는 거예요. 그러니 성진이 어머니가 얼마나 화가 났겠어요? 화보다도 여자로서 별의별 앙심도 다 가질 수 있지요. 그렇다고 내가 편지를 하나요? 편지 하면 안 된다구요. 6년 동안 갈라져 있어야 됩니다. 내가 약혼할 때도 약속을 했어요. 나라는 사람과 6년 동안 갈라져 있어야 된다고.

해방되기 전에 처음에는 어디로 가려고 했느냐 하면, 몽고로 가려고 했습니다. 우리 한민족의 조상이 몽고족이라구요. 하얼빈을 더 지나 가지고 몽고와 중국과 소련의 삼각지대 부근인 하이라얼이라는 곳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왜 거기로 가려고 했느냐 하면, 거기에 가면 몽고 말, 중국 말, 소련 말, 일본 말을 동시에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아시아 지역을 통할해 가지고 선교할 수 있고 치리할 수 있는 언어를 배워야 되겠다 하는 생각에서 그곳에 가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동경에서 `만주전업'에 취직해서 부임날을 받아 가지고 그곳으로 가려고 떠억 나왔는데…. 그때가 성진이 어머니하고 결혼식 하기 바로 전이지요. 그런 말 다 하자면 역사가 참 길다구요. (웃으심)

그때 그곳으로 가려고 한국에 나와서 척 보니까 정세가 틀렸어요. 가려니까 영계에서 그 길을 막아요. 그게 왜정 말기였지요. 그래 가지고 결국은 나와서 성진이 어머니와 결혼해 가지고 서울에 와서 시온파를 중심삼고 6개월 동안 쭈욱 지내다가, 평양에 자기가 하나님의 부인이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평양에 가서 그 할머니를 만난 것입니다.

가 가지고 그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서는 증거를 해야 됩니다. 누군가가 증거를 해야 된다구요. 예수님도 세례 요한이 증거했지요?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하고 증거한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증거를 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