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집: 불변의 모습 1969년 05월 2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08 Search Speeches

선의 기준은 가장 비참한 자리-서 세워진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어디로 찾아나오셨느냐? 오늘날 인류가 찾아나가는 방향으로 찾아 나오시지 않았습니다. 선의 목적은 인류가 나가는 방향과는 다릅니다. 그러니 어디에서부터 선을 맞이해야 하느냐? 반대의 자리에서부터 선을 맞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선의 주체이신 하나님이 우리 인류가 바라는 이상의 기준에 계시는 분이 아니고, 그 자리로 찾아 오시는 분이 아니라, 역사의 뒤에서 인류의 비참사를 책임지고 나오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즉, 타락인간의 방향을 따라 전진하며 선의 목적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와 반대되는 자리에서 선을 세워 나오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맞기 위해서는 반대의 자리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인류 역사과정에 있어서 비참한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찌하여 우리의 소망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바라보는 미래의 세계에 현현하지 아니하시고, 지나간 역사과정과 더불어 비참한 환경에서 터전을 닦아 놓으셔야만 하느냐! 이것은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입니다. 타락한 역사의 운명의 와중에서는 그것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도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막 10:25)"고 했습니다. 이것은 절대 불능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부자가 바라는 그 기준의 자리에는 하나님이 절대 오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낙오자요, 세상의 패망자요, 세상의 핍박을 받는 입장에 있어야 그 자리에 하나님이 오십니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의 모습을 갖출 수 없고, 자기 스스로를 가꿀 수 없는 완전히 상실한 그 자리에서부터 선의 기준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과정에 있어서 선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왔다 갔던 수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비참한 운명에서 싸우다가 이러한 비참한 운영에서 사라져 갔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오늘날 우리들은 살고 있는 생활환경이 정상적인 환경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것은 짓밟혀져야 합니다. 오늘날 변해야 할 입장이 변하지 않는 입장에 서게 될 때는 영원한 해방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인간들이 지상에서 현실에 적응하며 살고 있는 그 생활 자체가 습관화되었기 때문에 이것이 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반드시 변해야 합니다. 변하지 않고는 새로운 역사가 벌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고는 새로운 길을 갈 수 없고, 새로운 뜻, 새로운 선의 목적지를 향해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인간들을 찾아 나오신 기준입니다. 그러면 그 변하지 않는 기준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이냐?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애쓰는 것과 같은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 마음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따라 나오고 계시기 때문에, 그 기준에 도달해야 비로소 하나님과 상봉하는 것입니다. 그 기준에서 비로소 선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타락과 복귀의 원칙을 두고 볼 때, 이념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표방하는 변치 않는 것은 이 땅 위에 하나밖에 없으니 바로 과거 역사에 비추어 봐도 변치 않았고 지금도 변치 않으며, 시작도 변치 아니하고 끝도 변치 않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생명을 넘어서 사랑하는 사랑이고, 사랑하지 않을래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랑이요, 자기도 모르게 사랑하게 되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역사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