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집: 개척자가 되신 예수의 실체 1959년 02월 0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14 Search Speeches

개척자가 되"야 했던 예수의 애달" 사정

하나님은 타락한 인류를 붙들고 구원섭리하시기 위하여 무한히도 애써 나오셨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죄악에 빠져 있을 때 우리를 찾아 주고, 우리를 위하고 우리에게 복지를 소개해 주기 위해서 수고하신 분이 있다고 하면, 그는 우리의 사랑하는 부모도 아니요, 어떠한 정(情)으로 인연맺어져 있는 자식이나 부부도 아닙니다. 또한 국가도 아니요, 어떠한 성현 현철도 아니고 하나님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명심치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소망의 전체를 개척해 주기 위해서 오늘날까지 수고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사정과 심정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 우리의 엉클어진 모든 것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 쉬임없이 수고하며 싸워 나오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역사 이래 이 시간까지 개척자의 사명을 감당해 오셨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늘은 아담이 타락한 이후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4천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통하여 개척의 수고를 이어받아야 할 인간이 무지한 입장에 있었지만 변함없이 섭리해 나오셨습니다. 우리 인간을 대해 한 날의 소망을 두고 행복의 동산을 목표해 나오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역사를 거쳐 오면서 한걸음 한걸음 그 세계를 향하여 찾아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타락이후 4천년 동안 개인을 통하고 민족을 거쳐오면서 이스라엘민족을 세워 놓고, 당신의 소원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4천년 수고한 터전 위에 하늘의 전체적인 사명을 인계시키고 하늘의 심정과 소원을 인계시킬 수 있는 하나의 주인으로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그때 믿고 있던 유대교인들과 택함을 받아 선민이라고 자랑하고 있던 이스라엘민족은 그분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수고로 인하여 택함받은 이스라엘민족은 그의 수고를 해원성취하기 위하여 보내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받들지 못했고, 교단이 받들지 못했고, 사회와 가정 어느누구도 받들지 않았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소원하셨던 개척의 뜻은 좌절되었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성취의 일로(一路)를 걸어야 할 이스라엘민족은 실패의 일로, 즉 죽음의 길을 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척의 노정을 걸어오시면서 수고하셨고, 예수님은 이 개척의 뜻을 완수하여 하늘의 수고에 보답해야 할 영광의 사명을 지니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택한 무리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추방하니, 예수님께서는 4천년 수고해 나오신 하늘 앞에 그동안 개척해 놓은 이스라엘민족을 대신하여 다시 개척자의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되었던 사정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받들고 택한 민족들이 소망하는 이념의 세계를 건설하여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메시아를 바라고 있던 이스라엘민족은 정작 나타나신 예수님이 자기들이 소망하던 메시아인 줄을 몰랐습니다.여기에서 하늘의 슬픔과 비극의 장면은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되었던 것입니다. 그릇된 방향으로 전개된 이 한 사실을 놓고 우리들은 하나님 대신 슬퍼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만일 그러한 심정이 없다 할진대 인간을 대하여 개척자의 사명을 해오신 하나님의 심정, 택해 세운 민족앞에 개척자의 뜻을 품고 나타났던 예수의 심정을 우리들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행복의 터전과 소망의 동산을 이루기 위해서, 그 교단과 민족은 예수님이 선두에 서서 죽음의 고개를 가면 같이 가야 했고, 예수님이 행복과 기쁨의 고개를 가면 역시 같이 가야 했습니다. 하늘은 4천년간 수고하시면서 끊을 수없는 천적(天的)인 인연을 맺어 주었으나, 우리의 선조들은 하늘과의 인연을 배반하였고, 하늘의 개척의 공로를 배반한 이 사실들을 우리는 통분히 여기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