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집: 제4회 부모의 날 말씀 1963년 03월 2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01 Search Speeches

부모의 날의 의의와 그 설정 배경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서 부모의 날이라고 제정한 이 3월 초하룻날이란 것은, 수많은 날들 가운데서 우리 인생이 바라던 제일 귀하다면 제일 귀한 날입니다. 이 이상 귀한 날이 없는 가장 중요한 그런 부모의 날입니다.

이 땅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다 갔고, 또 지금 현재 살고 있으되 자기를 낳아 준 부모라고 하는 부모는 모시고 살았지만 부모의 날을 세워 가지고 축하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또, 지금까지 자기들이 부르고 있는 부모라는 것은 오늘날 섭리의 뜻 가운데서 보게 될 때에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부모가 못 되었고 땅이 축하할 수 있는 부모가 못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그 자녀들도 부모를 대해서 부모의 날을 가질 수 없는 자녀요, 또 부모들도 자녀를 세워서 자녀의 날을 세워 나를 통할 수 있는 자리에서 사랑하는 자녀로 대할 수 없는 이러한 슬픈 인연권 내에서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보게 될 때에 슬픔이 여기에 엉켜 있고, 자식도 부모를 바라보게 될 때에 부모를 바라보는 그 자식과 부모 사이에도 역시 슬픔이 엮어져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가 부모로서, 자식이 자식으로서 대할 수 있는 그 대함에 있어서 슬픔과 혹은 한숨이 지어지는 이런 고통의 상정이 없어야 할 것이 본래 부자의 인연을 중심삼은 인간의 인연인데, 그렇지 못한 인연을 가져온 것은 타락의 보응입니다. 이 타락의 보응은 부자의 인연을 기반으로 하여 이것이 형제의 인연으로서 연결되었고, 형제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친척에 전개되어 이것이 오늘날 세계 인류에까지 벌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슬픔이 있고, 혹은 근심이 인류 앞에 있고, 혹은 고통이 인류 앞에 있고 더 나아가서는 사망이 전세계에 덮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할진대 그것은 어디서부터 출발한 것이냐 하면 우리가 태어난 그날서부터, 역사적인 출발서부터 그런 동기와 내용을 지녀 가지고 있기에 그 결과의 인연을 갖고 태어난 우리에게 있어서는 필시 슬픈 역사의 인연을 벗어날 수 없고, 고통의 역사를 벗어날 수 없고, 탄식의 역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런 탄식의 세계, 이런 슬픔의 세계, 이런 고통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 각자는 우리 동족끼리의 슬픔을 제거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겠고, 형제지간에 있어서의 슬픈 인연을 제거하는 것도 필요하겠고, 한 가정에 있어서 부부끼리의 슬픔과 고통이 있다 하면 그것을 제거하여야 할 필요가 있지만, 제일 문제는 부자의 관계에 있어서 슬픔이 깃들어 있고, 고통이 깃들 수 있는 이런 죄악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한 부자의 인연권 내에 어려 있는 이 슬픔의 장벽을 어떻게 타파해 버리느냐 하는 이것이 오늘날 인간들이 고통을 겪어야 할 중대한 기준이요, 하늘이 인간세계에 세워 놓아야 할 사명적인 중대한 기준이 되어 있는 동시에, 오늘날 참을 추구해 나아가는 양심적인 마음을 가진 자녀면 자녀일수록 그 부모를 대하는 심정에 있어서 이 담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어느누구나 고대하는 마음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타난 외부의 담을 허는 것보다도 이제 부자의 관계에 있어서, 부모라는 명사를 중심삼고 맺어진 자녀와의 관계에 있어서 완전히 슬픔을 제거하고, 완전히 고통을 초월할 수 있고, 완전히 행복의 기반이라고 만천하 앞에 내세울 수 있는 한날의 인연을 세우지 않는 한 오늘날의 이 지상의 슬픈 기준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