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7집: 어떻게 증거할 것인가 1992년 11월 17일, 한국 국제연수원 Page #260 Search Speeches

예수님이 이 땅 위- 오신 목적

여러분은 통일교회의 축복가정들입니다. 축복을 안 받은 사람은 손 들어 봐요. 축복을 안 받은 사람, 얼마 안 되는구만! 대다수가 축복을 받았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이거예요. 우리 통일교회의 가르침을 두고 볼 때 축복의 가치가 얼마나 귀한가 하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완성한 참된 부모의 사명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예수님 혼자 가지고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가정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 가정을 이루려면 아줌마가 있어야 된다구요, 아줌마. 예수 아줌마! 예수 아줌마라는 말을 예수님이 듣고 싶었겠어요, 안 듣고 싶었겠어요? 「듣고 싶었겠습니다. 」 얼마나 듣고 싶었겠습니까? 또, 듣고 싶었을 뿐만 아니라 얼마나 보고 싶었겠느냐 이거예요.

그리고 예수 아줌마인 동시에 예수의 색시가 되는 것입니다. 아줌마가 좋아요, 색시가 좋아요? 「색시가 좋습니다. 」 알긴 아누만. (웃음) 여러분이 어떤 남자의 부인한테 '아줌마!' 하고 부르면 실례라구요. 안 그래요? 아무개 아줌마, 아무개 색시, 아무개 엄마…. 이렇게 불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애기가 있어 가지고 자기의 어머니를 대해서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싶었겠어요, 안 듣고 싶었겠어요? 「듣고 싶었습니다. 」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예수님하고 예수님의 상대 되는 그 사모님이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말을 듣고 싶었겠어요, 안 듣고 싶었겠어요? 「듣고 싶었습니다. 」 마찬가지입니다. 듣고 싶었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이 땅 위에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왔다고 하면, 그 가정에는 반드시 아내가 있어야 되고 자녀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다음에 아내와 아들딸들을 다 갖춘 그런 가정이라면 부모가 있어야 되는 있어야 되지요? 그 부모가 누구예요? 예수님의 부모가 누구예요? 「하나님입니다. 」그 시대의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인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셔 왔다는 거예요. 그러면 유대 사람들이 부르는 하나님 아버지하고 예수님이 부르는 하나님 아버지가 어때요? 아버지라는 말은 같은데 그 내용이 같았겠어요, 달랐겠어요? 「달랐습니다. 」 근본적으로 달랐다는 거예요. 예수님 이전에 나타난 이스라엘나라와, 유대교의 모든 백성들이 부르던 아버지라는 그 내용과, 예수님이 부르던 아버님의 내용은 달랐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달랐느냐 하는 문제를 보게 될 때…. 유대교의 사람이나 이스라엘 백성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바라보는 상대가 아니었다는 거예요. 구약성경을 중심삼고 메시아를 보내 준다고 했기 때문에 그 보내 준다고 한 메시아가 주목의 표준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그렇겠지요?

「예. 」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나라라든가 유대교라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메시아를 위한 나라가 되고, 또 메시아를 위한 유대교가 되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나라와 유대교가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이었느냐? 그 목적이 무엇이었느냐 이거예요. 예수님이 원하는 가정을 이루어 드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스라엘나라와 유대교를 세운 목적이었습니다. 그렇게 귀결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나라 가운데서 예수님의 사모님이 책정되었더라면, 또 이스라엘나라에 책정된 사모님이 있어서 예수님과 그 사모님이 하나님이 보시는 가운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한 가정을 이루었다면, 그 가정을 하나님이 포기하고 싶었겠어요, 양육하고 싶었겠어요? 「양육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 틀림없이 보호했을 거라구요. 그랬으면 예수님을 중심삼은 아들딸로부터 손자 손녀까지 일족이 생겨났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의 일족을 이스라엘나라하고 바꿀 수 있었겠어요? 어때요? 바꿀 수 있었겠어요, 바꿀 수 없었겠어요? 「바꿀 수 없었습니다. 」 그러면 이스라엘나라와 유대교뿐만 아니라 로마를 포함한 온 세계는 어때요?

동양에는 유교라든가 불교 신자가 많은데, 그 전체를 합해 가지고 예수님의 일족하고 바꿀 수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 「없었습니다. 」 하나님의 눈으로 보게 될 때는 바꿀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