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집: 반성과 내일 1975년 04월 0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70 Search Speeches

통일교회의 위치와 사명

그것이 비단 통일교회에 한한 문제로 돼 있더라도 문제됐겠지만, 통일교회 자체가 섭리를 대표했다는 입장에 섰다면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섭리적 한계뿐만 아니라 섭리를 중심삼고 국가와 세계 민족이 연결됐다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가진 위치와 사명이라는 것은 세계사적이요, 역사적인 내용이 돼 있는 것을 우리는 짐작하지 않을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 통일교회가 걸어 나온 이 기간에는 많은 역사, 즉 세계의 역사노정에 많은 변혁을 가져온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더우기 1960년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상의 역사학자들도 말하다시피 변혁의 시대로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간 한 15년 기간에 이 세계가 얼마나 변동됐는가? 많은 민족의 변동, 혹은 많은 문화의 변동, 윤리 방향의 변동 등 제반 변동의 형태를 갖추어 왔지만, 그것이 어떠한 방향과 목적을 중심삼은 변동이 아니라 자체내에 어떠한 목적도 없이, 방향도 없이 변혁만 하다 보니 그야말로 혼란된 와중에 떨어진 현실상을 우리는 직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에 통일교회만은 이와 같은 역사의 변혁 가운데서, 그 혼란된 와중에서 자체를 감출 것이 아니라, 이걸 뚫고 나가고 하나의 교량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 섭리가 바라는 통일교회의 사명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또,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러한 교량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이 혼란된 와중에 다리를 놓아야 됩니다. 다리를 놓는 데는 좋은 다리를 놔야 될 것이 아니냐?

여러분이 '샌프란시스코' 하면 골든 게이트 브리지 (Golden Gate Bridge)를 생각할 정도로 그 다리는 지금 천대의 미국 문명 기준에 있어서도 그 기준에 부합될 수 있을만큼 방대하고 굉장한 교랑인 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자체가 이 역사적인 와중을 가로질러 갈수 있는 그런 교량을 놔야 할 텐테 어떤 교량을 왔느냐 하는 문제를 우리가 생각하게 될 때, 그렇게 굉장한 교량을 왔느냐 하게 되면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통일교회 자체 수습을 하기에 급급하였던 그런 기간이 아니었느냐.

지금 통일교회로 말하면 20년 역사가 지났지만, 20년 역사 가운데 있어서 빛나는 이 민족의 문화를 대표하든가, 이 한반도를 대표한다 할 때, 두드러진 어떠한 새로운 세계에 연결될 수 있는 교량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밑바닥이 돼 있느냐? 터전이 돼 있느냐?

그 터전이 어떠한 힘이 와서 부딪치더라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기반이 돼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그러한 기반이 됐다고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라는 형태를 지녀 가지고 이 사회에 있어서 하나의 모습을 드러낼 뿐이지 그 모습을 가지고 전민족적이요. 국가적이요, 아시아적이요, 세계적인 어떠한 주류의 내용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다시 한 번 반성해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지금까지 수십 년 역사를 지내고 다시 한 번 반성하게 될 때에, 하나님이 바라는 그 기준과 우리가 지금 처해 있는 기준은 상당한 차이가 있지 않느냐! 그 차이가 물론 민족이 잘못해서 났던 것이든, 혹은 우리가 잘못해서 났던 것이든, 하여튼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면 그 책임을 누가 져야 할 것이냐? 그 책임은 물론 우리가 져야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지는 동시에 이 민족도 져야 되겠지만 물론 하나님도 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이것은 통일교회만이 책임을 져야 할 문제가 아니고, 통일교회를 중삼삼고 이 민족이 책임져야 되고, 이 민족을 중심삼고 하나님까지 책임져야 할 문제가 됩니다.

이렇게 보면 민족이 현재 책임 못 한 자리에 섰고, 우리 교회가 책임 못한 자리에 섰으니 하나님은 어떤 자리에 섰느냐? 책임 못한 자리에 하나님 자신도 끌려들어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결론을 짓고 난다면, 하나님은 기쁜 마음을 가지고 지금까지 통일교회로 대해 왔겠느냐, 슬플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나왔겠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것은 하나님이 책임지는 데 기쁘고, 혹은 소망적이고, 칭찬할 수 있는 자리가 못 되느니만큼 슬플 수 있는 책임적 소행을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배후에서 지탱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던 기간이 아니냐 하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