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집: 하늘을 사랑하자 1969년 01월 26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78 Search Speeches

예수님의 아" 가슴

에덴 동산에서 인류의 시조로 지음받은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출발하였으면 사랑의 인연이 영원히 계속될 수 있었을 것인데 그 기준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4천년의 역사노정이 슬픈 곡절의 역사로 남아지게 되었고 비운의 역사로 남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소망을 가지고 인간을 찾아 나오시던 하나님의 소원을 비로소 성취시켜 드릴 수 있는 중심존재로 예수님을 보내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을 중심삼고 일체화되어 이분이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고 싶었던 사랑의 화신체라고 환영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과 이스라엘 민족은 이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역사과정에서 둘도 없는 슬픔이요, 비통한 사실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와서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은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통일인들은 예수님이 죽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불쌍한 인류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연결시켜 주기 위해 오셨고, 평화의 나라, 평화의 통일세계를 이루기 위하여 오셨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이런 소망을 이 땅 위에 이루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비운과 슬픈 사연을 그대로 가슴에 품고, 하고 싶었던 일과 이루고 싶었던 뜻을 이 땅 위에 펴지 못하고 십자가의 이슬로 사라져 갔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도 왔던 인연을 남겨 놓아야 할 사명이 있는 연고로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고 권고하며 가신 것이 하나의 표준이 되어 기독교를 중심삼고 지금까지 2천년 역사를 이끌어 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나는 가나니 신랑으로 가고 너희들은 남나니 신부로 남아져라' 하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신랑으로 왔던 예수님이 신부를 맞아 평화의 가정을 이루고, 그 가정을 중심삼고 평화의 종족과 평화의 민족과 평화의 세계를 이루어야 할 새로운 역사의 출발을 위해 왔지만, 그의 전체적인 소원이 무너짐으로 말미암아 그는 사랑을 중심삼고 교단을 바라볼 수 없었으며, 사랑을 중심삼고 민족을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사랑의 심정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의 수많은 가정과 개인을 대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인류는 4천년 동안 하나님의 사랑을 소원으로 삼고 찾아 나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으로 가꾸시어서 이들에게 사랑의 주체인 예수님을 보내시며 그들이 예수님과 인연을 맺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과 인연을 맺는 그날이 희망이 달성되는 날이요, 소원이 성취되는 날인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의 배후에 수고한 인연을 남겨 놓은 채 가야만 했던 예수님의 비참한 사정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오신 신랑을 맞이해서 혼인잔치를 해야 했던 이스라엘 민족이 오히려 신랑을 쫓아내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게 함으로써 역사적인 죄를 짊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소원하시던 신부를 맞이하지 못하고 가야만 했던 그 아픈 마음을 참으면서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지금까지 고대해 나온 것이 2천년의 기독교사입니다. 이 기독교사는 지금까지 비참한 순교의 피로 물들여져 왔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