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집: 솔직한 신앙자 1971년 07월 0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43 Search Speeches

신앙인이 지녀야 할 태도

여러분은 자기가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해야 합니다. 자기가 열만큼 잘못했는데도 '아버지, 저는 여덟만큼 잘못했습니다'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열만큼 잘못한 것을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이 솔직해야 됩니다. 그 하나님이 자신이 잘못한 것을 열만큼으로 바라보고 있어도 자신은 백만큼 죄를 범한 것같이 고통을 느끼면서 '저는 당신 앞에 용납받지 못할 사람이니 나를 멀리 하시옵소서'라고 하는 입장에 서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 얼마든지 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열만큼 잘못했는데도 자신이 너무 솔직해서 백만큼 고통을 느끼면서 '하나님을 대할 면목이 없습니다'라고 하며 도망가려고 한다면, 도망가려고 해도 도망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입장에 서게 되면 하나님의 긍휼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않아요?

하나님은 열만큼의 죄로 바라보시는데 자기 자신은 백만큼의 죄의식을 느껴 가지고 고통을 받게 될 때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변명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솔직히 바라보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나는 이렇습니다'라고 하며 솔직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잘못해 놓고도 이러고저러고 변명이 많아요. 그건 솔직하지 않은 거예요. 솔직하다는 기준이 자기가 정한 기준이냐, 공적으로 정해져 있는 기준이냐 하는 문제를 볼 때, 이러고저러고 변명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중심삼고 그 기준을 정해 가지고 이러고저러고하는 것이지, 공적 기준을 중심삼고 이러고저러고하지 않는 것입니다. 공적 기준을 중심삼고 이러고저러고하는 사람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러분이 이러한 생활태도에 어긋나게 될 때는 여러분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결과에 부딪치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이 잘 예측할 것입니다. 더구나 심각한 영적 체험을 한 사람들은 자신이 말 한마디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일주일 이상 회개해야 탕감이 되는 경우를 많이 느꼈을 것입니다. 일년 이상 회개해야 탕감이 가능한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말이 그만큼 무서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간에 있어서나, 부자관계에 있어서나, 혹은 부부관계에 있어서, 자식을 대하는 데 있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대하는 사람 전부가 자기 본성적 기준에 의해서 각각 방향을 달리하고 있으면 그 방향에 있어서 나는 이 이상의 기준을 넘지 않는다는 기준을 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엄벙덤벙 휩쓸려 가게 되면 이것도 아니요, 저것도 아니요, 선도 아니요, 악도 아니라는 거예요. 그것은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차든지 뜨겁든지 둘 중의 하나가 되어야지 미지근해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그러기에 악한 것을 행하고, 그것을 알고 뉘우치는 사람은 선한 길로 돌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을 행하고 나쁜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기를 변명하는 사람은 언제나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솔직한 생활이 필요합니다. 솔직해야 됩니다, 솔직한 신앙 생활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생활에서도 솔직해야 됩니다. 그런데 변명이 많다는 거예요. 요즈음 전도하러 임지에 나간 전도대원들 중에 전도하다 말고 돌아온 전도대원들이 있는데, 그들을 보고 식구들이 '어떻게 돌아왔소' 하면 이러고저러고 변명이 많다는 거예요.

통일교회면 통일교회 전체가 움직이는 활동을 중심삼고 가야 할 복귀의 노정은 개인 혼자 못 가는 것입니다. 개인은 반드시 가정과 합하여 가야 합니다. 이것이 천국 들어가는 길입니다. 가정도 가정 자체로써는 못 갑니다. 가정은 반드시 교회와 합하여 가지고 가야 합니다. 또 교회는 나라와 더불어 가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공식입니다.

그러면 보다 솔직한 길이 어떠한 길이냐? 보다 큰 것 앞에 솔직해야 합니다. 종족보다 큰 국가 앞에 솔직해야 되기 때문에 종족관이 있더라도 종족관만을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우리 종족관을 중심삼고 이렇게 해야 된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종족관은 보다 큰 국가관 앞에 굴복을 당하고 흡수를 당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국가가 종족에게 제재를 가하더라도 종족은 제재당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것이 타당한 공식이라는 거예요. 보다 큰 문제를 중심삼고 작은 문제는 흡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관(觀)이 아무리 차원 높더라도 개인의 관보다는 가정의 관이 차원 높습니다. 가정의 관보다는 종족의 관, 민족의 관, 국가의 관이 더 차원 높습니다. 더 나아가 세계의 관이 더 차원 높습니다.

대한민국이 하늘나라를 이루었다 하더라도 대한민국만의 하늘나라 가지고는 안 됩니다. 세계적인 하늘나라를 이루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의 수많은 민족이 가진 민족감정을 초월할 수 있는 국민들이 되어야 됩니다. 여기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보다 큰 관(觀)을 가지고, 거기에 일치될 수 있는 내용을 중심삼고 언제 어느 환경에서든 개의치 않고 보조를 맞출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선한 사람으로 남아질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반드시 가다가 중단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