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집: 심정만이 하늘과 동반할 수 있다 1962년 03월 2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15 Search Speeches

자신의 불행을 말"하시지 못하셨던 하나님

인간에게는 한이 있다 해도 1대의 한인데, 인간들은 그것을 푸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한은 역사적인 한이요, 하늘의 원수는 역사적인 원수입니다. 때문에 인간이 제아무리 큰 한을 품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하늘 앞에 내세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이나 종족, 혹은 민족을 붙들고 한을 토로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러실 수 없습니다. 왜? 이 세계가 원수의 세계요, 인간들이 원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인 고통이나 불행이나 억울함이 있어도 인간 앞에 '내게 이러이러한 억울함이 있다'고 말할 수 없는 하나님입니다. 자신이 원수에게 찢기는 원통함과 고통스러움이 있다 할지라도 인간 앞에 호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사정과는 전혀 비교도 할 수 없는 사정을 가지신 하나님입니다.

인간은 깨깨(충분히 또는 심히, 《평북방언 사전》참조) 불행해야 합니다. 전세계 인류가 다 깨깨 불행해야 합니다. 불행하거나 고통스러워서는 아니 될 하나님을 인간이 불행하고 고통스럽게 만들었으니, 이 땅의 인류는 고통의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역사적인 불행을 갖고 계십니다. 이 불행을 청산하기 위해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를 끌고 심판의 한 날을 향하여 매진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누가 앞장을 서야 할 것이냐? 하나님을 안 사람이 앞장을 서야 합니다. 먼저 뜻을 안 사람이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이상적인 평화를 노래해야 할 하나님이 어찌하여 양을 잡고 소를 잡아 드리는 제물을 받아야 하는가? 참다운 도라 할진대 제물의 과정을 밟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간이 비참한 자리로 나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저지른 죄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비참을 당신의 것으로 연결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쓰러지시는 대가로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세계적인 시대로 넓혀 나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세계적인 뜻을 가지고 쓰러지셨습니다. 하나님이 거기에 동반하신 것입니다. 인간은 모르고 있지만 하나님은 책임지고 나오십니다.

기독교에서는 끝날에 7년대환란이 있다고 합니다. 그때에 부름을 받을 수 있는 자는 행복을 노래한다거나 부러움을 받는 자가 아닙니다. 7년 대환란은 가정적인 것이 아니고 세계적인 것이니 세계적인 심정을 가지고 넘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오시는 분이 끝날에 오실 메시아입니다.

하늘 길을 가는 이들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마음대로 입지도 못합니다. 더구나 행복이니 평안이니 하는 명사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하늘이여, 온 세계 인류여, 쳐라. 과거의 역사를 통하고 현재와 미래를 연결짓는 심정을 걸어서 쳐라. 과거의 원수와 현재의 원수와 앞으로 나타날 원수까지, 나아가 영계의 사탄까지도 전부 동원하여 쳐라' 해야 합니다. 역사적인 불행을 탕감하려면 주위환경이 총동원하여 나를 몰아쳐도 그것을 이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승리자가 됩니다. 사탄들이 있는데 어찌 불행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쓰러져도 하나님을 붙들고 쓰러져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자의 생활입니다. 역사를 더듬어 볼 때 아벨, 모세, 예수는 모두 효자로서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아담 가정이나 노아 가정이나 아브라함 가정, 나아가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붙잡고 쓰러지지 못했습니다. 불행의 왕자가 되더라도 불행이라는 명사에 깔려서 쓰러져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불행의 명사를 깔고 하늘을 붙들고 쓰러져야만 천적인 뜻이 이루어집니다. '내게서 모든 불행을 청산하시옵소서' 해야 거기서부터 민족적인 출발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쓰러지되 하나님을 붙잡고 쓰러져서 심정의 터전을 남겨 놓아야 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쓰러져도 소망의 일념을 가지고 '하나님' 하며 하나님을 붙들고 쓰러져야 새로운 시대의 상속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