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9집: 나와 섭리역사의 회고 1980년 10월 26일, 한국 본부교회 Page #14 Search Speeches

타락한 인간은 탕감이란 -리적인 길로 가야 복귀될 수 있어

그런데 아벨을 통해서 가는 데에는 아벨에 대해서 '야, 아벨아! 직접 내 앞에 와라' 할 수 있게 안 되어 있다 이거예요. 반드시 가인을 통해 가지고 와야 된다 이거예요.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이 왜 그러냐?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탕감복귀라는 내용, 탕감복귀를 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 이거예요. 인간이 지은 죄라는 것은 인과원칙에 있어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악을 행하면 악의 대가를 받아야 되는 거예요. 또 선을 행하면 선의 대가가 반드시 있는 거예요. 그 대등한 대가의 기준을 치러야 할 입장에 있기 때문에 탕감이라는 조건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탕감이라는 조건이 뭐냐? 인간이 가고픈 길을 가는 것이냐? 아니다 이거예요. 가기 싫은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가기 싫은 길은 가는 데 있어 보통 사탄세계에 있는 사람들은 울며 불며 가지마는 하늘의 뜻을 가는 사람은 울며 불며 가 가지고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다 이거예요. 뜻의 본질이 울며 불며 가게 되어 있지 않다 이거예요. 기쁜 소망 가운데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것을 소화시키면서 가야 된다 이거예요. 아무리 고통 가운데에 있더라도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가지고 내일의 승리를 표방하고 하나님의 뜻의 방향을 일치시킨다는 입장에 서 가지고 희망을 품고, 미래의 소망을 지녀 가지고 그 환경을 소화·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이후에 뜻을 따라가는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럼 직접 왜 못 가느냐? 이게 문제라구요. 직접 갈 수 없기 때문에 오늘날 수많은 종교를 중심삼은 복잡한 문제가 역사과정을 통해 쌓여 나오고 있다는 거예요. 첩첩이 가로놓여 나온다는 거예요.

개인으로서 가야 할 뜻의 길을 완성하지 못하면 가정으로서 가야 할 뜻의 길에 나올 수 없다 이거예요. 또 가정이 완성할 수 있는 뜻의 길에 나오지 못하면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 전체, 즉 영계까지 완성의 길이라는 것을 찾을 수 없다 이거예요.

이러한 결론을 중심으로 오늘날 섭리역사를 추진시키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지금까지 그러한 때가 있었느냐? 그러한 때가 없었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것이 왜 이렇게 되었느냐?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됐다 이거예요.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뜻의 일치점이 그날부터 시작되는 거라구요. 다시 말하면 뜻의 출발과 더불어 창조목적을 완성할 수 있는 정상적인 궤도에서 출발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어느 기간만 통하면 반드시 그 창조목적을 완성하는 단계로 자연적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싫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소망 가운데 살아 가면 그냥 그대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순리적인 인생행로가 뜻의 길을 맞출 수 있게끔 되어 있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역리적인 길을 따라 가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탕감이라는 내용을 지녀 가지고 뜻의 길의 재접촉을 추구해 가는 것이 인간 타락 이후의 역사의 방향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다 이거예요. 그러므로 역사는 가면 갈수록 편안한 역사가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면 갈수록 어려운 역사로 빚어질 것이다 이거예요. 개인의 역사도 비참하지만 가정의 역사도 비참할 것이고, 가정의 역사도 비참하지만 그 종족과 민족, 나라까지 비참할 수 있는 결과로 가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그러면 끝날이 어느때냐? 세계적인 수난시대입니다. 세계적인 모든 파탄의 시기가 올 것입니다. '세계 역사 이래에 이 이상 어려움이 없다' 할 수 있는 혼란과 파탄시대가 올 것이라는 것을 이러한 원칙에서 우리는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때가 어떤 때냐? 지금이 바로 그때라는 것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벨의 입장으로 돌아가 뜻을 대하는 아벨의 입장을 중심삼고 볼 때에 그 아벨이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알았느냐? 그게 문제예요. 확실히 알았느냐? 확실히 몰랐다구요. 왜 하나님이 확실히 가르쳐 주지, 확실히 모르는 자리에서 가게 했느냐? 그것은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원리결과주관권 내에 있어서의 소생, 장성, 완성 단계까지는 원리의 결과만을 타진해 나가는 하나님의 입장이기 때문에 그것을 직접 가르쳐 줄 수 없다는 논리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확실히 알아야 돼요. 확실히 알지 못한다면 가면서 깨우쳐 가야 되는데, 그 깨우치는 길이라는 것이 평탄하고 순리적인 입장에서 가는 길이 아니라구요. 절대 아니다 이거예요.

타락한 세계의 인간들이 요구하는 순리적 환경적 여건에서,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깨우칠 수 있으면 그 얼마나 좋겠느냐 이거예요. 타락이 없었다면 그럴 수 있다는 거예요. 순리적인 과정을 통했다면 영광의 자리에서 그것을 깨우칠 수 있지만,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반대로 됐다구요. 그러므로 뜻을 알기 위해서는 수난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세계에서 갖은 중상 모략이라든가 비애에 탄식할 수 있는 모든 조건들을 거쳐가면서 부딪쳐 가지고 그것을 소화해 가면서 하늘을 사랑하고 뜻을 모색하겠다고 하는 거기에 있어서 뜻을 깨우쳐 갈 수 있는 길이 있지, 편안히 예수 믿어 복을 받고 편안히 살겠다는 길에서는 깨우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 이거예요